-사람은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사람은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고,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고, 사람에게서 존재 가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태양의 서커스를 보며 느꼈다.
우연히 표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자리는 SR석. 무대 측면 제일 앞쪽 자리였다. 2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기 때문에 내 돈 주고는 안 봤을 공연.
나는 태양의 서커스가 있는 줄도 몰랐고 어떤 공연인지도 모른 채 사전 정보 없이 가게 되었다. 옛날에도 서커스 공연이 있었던 것 같지만 서커스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공연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은 큰 텐트(?) 안에 모여 있었다.
SR은 제일 앞에 있었는데 다른 좌석들도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앞 좌석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옆에 어떤 할머니가 오셨는데 아들이 표를 사 줘서 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자리가 한 자리밖에 없어서 아들은 못 오고 혼자 오셨다고 했다(?).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거시는 게 외로워 보였다. 할머니는 어릴 때 서커스를 보고 50년 만에 처음 보는 거라고 했다. 공연 중에도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셨는지 끊임없이 공연에 대해 말을 거셨다.
어쨌든 무대 중앙에 커다란 원판이 있었고, 무대 주위로 노란 꽃이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자 곤충이나 동물로 꾸민 배우들이 무대를 서서히 달궜고, 멕시코행 비행기 탑승 안내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남자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낙하산을 메고 낙하하였다. 그 배우가 공연을 재미있게 이끌어가고 물과 빛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공연은 재밌었고 흥미로웠다. 아찔한 순간도 많아서 가슴을 졸이면서 봤다. 줄에 매달려 곡예를 펼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온갖 묘기를 부리기도 하고, 그네로 높이 점프하여 다른 그네로 옮겨 타기도 하였고, 물이 비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물을 이용해 서커스를 하기도 하고, 관절을 꺾는 사람도 나오고, 저글링을 하는 사람도 나왔다.
중간에 어떤 아시아계로 보이는 여자 배우가 나왔는데 남자들이 그 여자 배우를 던지며 공연을 했다(아다지오). 그 여자 배우는 키가 작고 몸이 단단해 보였고,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다. 다리를 찢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한 남자의 손에서 다른 남자의 손으로 던져질 때 관객들은 아~ 하며 탄식을 뱉었다.
그 여자 배우는 긴장을 해서인지 힘들어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배우들의 60~70%와 남자 배우들의 20~30%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표정은 마치 긴장한 듯한 표정보다는 매일같이 하는 공연에 지쳐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 연습은 얼마나 닳도록 했을 것이며, 동작 하나를 하는데도 힘이 많이 들고 위험이 있는데 그걸 2시간 동안 해야 되고, 당일 저녁에도 같은 공연이 (1시간 반 뒤에) 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공연이 월요일 빼고 계속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공연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같은 배우들이 계속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보겠지만 그들에게 서커스는 매일 해야 하는 일이고, 처음에는 공연을 하는 것이 꿈이었겠지만 어쩌면 군중 속에서 번아웃이 왔을지도 모른다. 매일 다칠 위험도 도사리고 있고, 만에 하나라도 다치게 된다면 서커스 인생은 끝이 나고, 자신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했지만 그만두고 나면 자신을 대체할 지원자들은 넘쳐날 것이라는 생각을 왜 안할 것인가.
중간에 콘토션(연체 곡예)을 하는 배우도 있었는데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허리가 180도로 접혔고, 다리가 뒤로 한 바퀴를 돌아 얼굴 옆에 있었다. 사람들은 끔찍하다는 소리를 질러댔다. 어떻게 척추나 관절이 저렇게 유연할까 싶었는데 나중에 커튼콜을 할 때 보니 척추가 역 S자로 굽어 있었다. 등은 원래 뒤로 둥그스름하게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안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젊어서 괜찮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척추에 문제가 생기고 통증으로 고생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어렸을 때라면 환호성을 지르며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친 서커스 배우들은 그 일에 몸을 갈아 넣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힘든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었다. 언제 다칠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서커스를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할지 고민도 많을 것 같았다(대부분 나이가 젊었다). 끊임없이 같은 동작이나 공연을 반복해야 하고, 자신은 위험을 무릅쓰며 하는 동작이지만 관객에게는 단순한 즐길거리라는 씁쓸함도 있을 것이다. 제일 앞자리에서 그들의 표정을 보니 마냥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은 로봇이나 AI가 모든 것을 다 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감동과 관련된 직업은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만약 로봇이 서커스를 한다고 하면 어떨까? ‘잘하네.’ ‘기술 좋네.’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예를 들어 끊임없는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동작에 대한 감동, 사람이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 등은 로봇이 줄 수 없는 감정이다. 연예인도 그렇고 서커스를 하는 배우도 그렇고, 피아니스트 등 예술가들도 로봇이 줄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직업일 것이다. 물론 사람의 손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은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고,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고, 사람에게서 존재 가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태양의 서커스를 보며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