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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May 07. 2024

20대의 연애가 지금에 와서야 부끄럽다

        


20대에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나는 머리가 좋고 창의력도 풍부했으며 나중에 큰 일을 할 것만 같았다.     



꿈을 꿨다. 20대 때 만났던 친구들이 나왔던 것 같다. 잊고 살던 그때의 감정이나 기억들이 꿈을 통해 드러났다.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었던 과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잠을 깨니 새벽 3시였다. 아직 잠을 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으나 잠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뭔가 20대의 나의 모습에 부끄러운 감정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너무 찌질했고, 독단적이었고, 싫은 것이 많았다.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내 주제도 모르고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특히나 연애를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첫 연애가 늦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첫 연애를 했고 매우 서툴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못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짝사랑에 그쳤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 나아졌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거는 일도 있게 되었다.      



연애를 하면 자신의 감추어진 성격도 다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안 좋은 성격들이 다 나온 것 같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었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질투를 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의 관점에서만 판단했다. 상대의 단점이 있으면 바꾸려 하였고, 그것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도 그랬다. 상대의 상처도 잘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좋아하는 감정이 큰 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경향 또한 컸다. 헤어지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 번의 연애로 모든 것이 성숙하지는 않는다. 그 후의 연애 또한 그렇게 어른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질투의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상대방에게 구속감을 줄 정도는 되었고, 상대방이 느낄 감정들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도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상대방도 그러리라고 마냥 생각했던 것 같다. 이별은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었고, 나를 망가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 다가와도 외모의 단점이 거슬리거나, 성격이 마음에 안 들거나, 앞으로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지 마음에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못난 점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상대방이 더 못나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관계를 끊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내가 꿈을 꾸면서 웃었던 모양이다. 와이프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꿈에서 여자와 같이 있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꿈에서 여자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꿈에 뭐가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일어나자마자 20대 때의 내가 부끄러웠던 것을 보면 예전 기억들과 관련된 꿈을 꾼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와이프와 연애를 했을 때 모든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는 결점이 있었고, 내 위주로 생각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20대 때 했던 연애와는 확실히 달랐다. 나 자신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어떤 단점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단점이 있듯이 상대방도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서 까칠하게 굴거나 바꾸려 하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나의 기준대로 하기보다는 상대방도 나처럼 기준이 있을 수 있으니 서로 맞춰 나가는 것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연애든 친구 관계든 무조건 가까이 있고 생각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거리도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기준대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다 보면 마찰이 생기고 관계가 오래가기가 어렵다.      





20대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서툴렀던 연애를 성공시키고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과정 또한 나의 인생이고, 그런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그것이 관계든 일이든 돈이든, 그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면 되지 않을까.      



꿈을 꾸고 난 뒤 나의 20대의 모습들이 부끄러웠지만 그것도 의미가 있는 일인 것 같다. 지금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고칠 점이 있다면 고치고, 20대 했던 철없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가진 현실을 바탕으로 살다 보면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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