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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Apr 30. 2024

죄 없는 죄책감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죄책감이 생길 수 있을까. 환자 또는 가족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거나 혹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좀 더 어떻게 했더라면 괜찮았을까?’ 하는 아픈 마음을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건 그 사람의 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너의 잘못은 없다고. 또 어떤 사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겠지. 네가 잘 못 돌봐서 그렇게 된 거라고.     



내가 맡고 있던 환자가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은 없었을까.’ 하루 종일 곱씹어 보고, ‘내가 좀 더 어떻게 했더라면 괜찮았을까.’ 돌이켜 보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은 나를 끊임없이 짓누른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말을 했다.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에 그런 거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다잡아도, 나는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이니까 길을 가다가 돌에 맞아 죽어도 감사하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무런 잘못은 없지만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고.     



어쩌면 착함이라는 덫에 걸렸거나, 완벽을 지향하다 보니 그런 것은 아닐까. 죄는 없지만 ‘잘하지 못함에 대한 책임감'이 ‘죄책감’이 된 것일까. 아니면 어릴 때부터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발동된 것일까.     



반대로 내 환자가, 내 가족이 안 좋아져도 나는 잘못이 없으니 무덤덤한 것이 좋은 것일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나의 죄가 없으니 괜찮은 것인가. 죄 없는 죄책감이 너무 심해져서 힘든 것보다 무덤덤한 것이 나은 것일까. 내가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마음이 없는 냉혈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인간으로서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연 이런 딜레마 앞에서 중간을 잘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아프지만 너무 아프지는 않아서 내가 괴롭지는 않은 아주 적당한 상태. 그 상태로 일생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 중간이라는 것은 배워서 알 수 있는 일일까. 경험한다고 그 상태를 찾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은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괴로웠다. 괴롭지 않은 것이 좋은지 괴로운 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 채, 죄책감이 드는 것이 좋은지 죄책감이 없는 것이 좋은지도 모른 채 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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