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종교나 미신은 영혼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얘기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다시 태어난다는 얘기도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주제가 된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혼을 부정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고, 종교인에게 종교란 삶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간은 영혼을 확인할 수 없고, 뇌의 사고 체계 밖에 있는 현상은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는 곧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영혼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고 해서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믿든 믿지 않든 영혼이라는 개념은 있고, 그 주체는 바로 인간이고,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혼에 대해서 사고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후에는 영혼에 대한 몇 가지 모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영혼은 육체와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정신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질병으로 정신이 없거나 흐려져도 영혼은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육체와 정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분리되어 어디론가 간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 그리고 영혼은 눈으로 보이거나 만질 수 없는 비물질적인 존재로 인식되는데, 여기서부터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첫째, 영혼을 물질적인 존재라고 가정해도 모순이 생기고,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가정해도 모순이 생긴다.
우선 영혼은 비물질적인 존재라는 개념이 더 많으니 비물질적 모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영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귀신이나 유령이다. 귀신을 봤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귀신을 매개하는 무당(영매)이 있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귀신이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사람에게 보일 수가 없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없어야 한다.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은 눈의 망막에 광자가 들어오거나 사물이 맺혀야 하는데, 빛이 들어오거나 사물이 맺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물질적인 존재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망막에 상이 맺히지 않고서도 귀신이 보이는 것은 뇌의 시각 해석 과정에서 뇌가 만들어낸 상으로 이는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귀신이나 유령이 회자되는 건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비물질적인 존재가 물질세계에 개입을 하려면 물질과 접촉점이 있어야 하는데 물질과 접촉점이 생기는 순간 영혼은 더 이상 비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 된다.
영혼에 물질적인 특성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사람의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잠시 물질화되거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도록 물질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물질화되거나 물질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곧 우주의 물리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영혼이 물리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고 한다면 이미 영혼의 개념이 아닐뿐더러 여러 가지 물리 법칙에 위배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물질인 사람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하려면 질량이 있어야 하는데 영혼에 질량이 있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인간이 생기기 전 영혼은 과연 있었을까? 있었다면 ‘인간’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가?(인간이 생기기 전이므로) 없었다면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가?(소멸할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라는 의문까지 영혼에 대한 모순적인 상황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남고 영혼만 어디론가 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러면 아이의 영혼과 70년을 산 노인의 영혼은 같은가? 영혼은 변하지 않고 같다고 해도 문제가 되고, 변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영혼이 변하지 않는다면 살아있을 때의 행적은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이것은 큰 문제이자 모순인데, 영혼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있을 때의 기억이 새겨져 있지 않을 것이고, 살아있을 때의 행적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불교에서는 죽으면 영혼이 되었다가 새로운 몸을 받아서 다시 태어나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윤회를 하다가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영혼이 변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조차도 영혼에게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다는 모순이 생기고,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교리도 마찬가지로 아기일 때 죽는 것과 노인이 되어 죽는 것은 천국에 가냐 지옥에 가냐의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영혼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배된다.
영혼이 변한다면 어떨까? 영혼이 변한다면 태아의 영혼이 다르고, 어린이의 영혼이 다르고, 육체나 정신 또는 행적에 따라 영혼이 변한다는 말인데 이는 영혼의 기본 개념과 배치된다. 영혼의 일반적인 개념은 영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변한다면 <첫째>에서 다룬 물질계와의 상호작용에도 문제가 되고, 죽은 이후에 영혼이 다른 곳에 있다가 다시 다른 사람의 태아로 들어왔다고 할 경우 그 태아의 영혼은 순전히 그 태아의 영혼이 아닌 것이 되는 문제도 생긴다(그 전 사람이 죽을 때 나온 늙고 순수하지 않은 영혼이 그 태아의 영혼이 되기 때문). 또한 병이 악화되어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육체가 피폐해져서 죽은 경우 영혼도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병든 영혼은 천국에 가도 문제, 지옥에 가도 문제, 다시 다른 생명으로 윤회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셋째, 물질 이외의 세계가 있다고 한들 물질계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영향이 있는가?
종교에서 가장 인간에게 겁을 주는 것이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가거나 나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논리다. 만약 죽고 나서도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받거나, 나쁜 존재로 태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런 의문이 연달아 생긴다. 영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통증이라는 것은 육체가 있는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이미 육체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이라는 것에 고통이 생긴다고 한들 그것은 지금 나의 존재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영혼이라는 것이 어딘가를 떠돌다가 다른 생명으로 간다고 한들, 그 생명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가 어렵다.
혹은 신이라는 영적인(영혼과도 같은) 존재가 있어서 인간이나 인간의 영혼을 벌한다고 하지만 신이 물질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확인된 바가 없고, 신이 인간적인 감정과 상벌 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이다. 만약 동물이 다른 동물을 고의로 죽이거나 괴롭히는 등의 나쁜 짓을 한다면 신은 그 동물이나 동물의 영혼도 벌할 것인가? 우주를 초월하거나 우주를 창조하였다고 하는 신이 그런 물질계의 사사로운 일들까지 다 개입을 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 외에도 많은 의문들이 있지만 영혼을 정신과는 달리 죽지 않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영혼이라는 것을 어떤 생명현상이나 정신작용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의문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모순점이 생기지 않는다.
예전 사람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이 신기했을 것이다. 방금까지 살아있다가 죽은 사람을 보면서 육체는 똑같은 것 같은데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가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영혼의 개념을 잡은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든 사람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 뭔가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을 덜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것 같다(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에게 엄마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도 이와 같다).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가거나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나쁜 짓을 덜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한몫을 한 것 같다.(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살아있을 때 영혼의 존재를 믿고, 천국에 가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예전 사람들은 정신세계라는 것도 신기했을 것이다. 육체는 팔다리가 움직이고 심장이 뛰고 배변을 하는 등 겉으로 볼 수 있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을 하고, 뭔가를 보거나 들을 수 있고, 감정의 변화가 생기고, 뭔가를 계획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런 기능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이 언어 능력이 없어지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계획하지 못하는 등 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들이다. 만약 여기에 영혼의 개념을 넣는 순간 상황은 이상해진다. 예를 들어 좌뇌의 베르니케 영역을 손상받은 사람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이 안 되는 말만 하는 경우 영혼도 언어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인가? 시각 정보를 해석하는 복측 측두 경로에 손상을 받아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영혼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인가? 선천적인 뇌 장애로 인지기능을 못하는 사람은 영혼의 지각 능력 없이 태어난 것인가? 영혼이 온전하게 태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자폐증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조현병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혼이 분열된 것인가? 등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의문들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영혼이라는 개념 없이도 앞뒤가 맞는 사실들에 영혼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개입시키는 순간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는 없을까? 아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즉 우리의 뇌가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은 많다. 전파도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이고, X-ray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다. 자기장도 우리는 느낄 수 없고, 전자나 원자도 인간의 뇌가 인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밝혀진 것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를 구성하던 원자, 분자, 그리고 에너지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연의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영혼은 자연계에 머물다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물이나 자연 현상이나, 동물과 식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육체와 분리된 죽지 않는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거나, 소멸하지 않는 귀신과 같은 영혼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좋은 일을 한 사람과 나쁜 일을 한 사람의 영혼이 상과 벌을 받는 것에 대한 것은 아직은 모순점들이 많은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