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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Jan 30. 2024

어릴 때 만들지 못한 자아정체감

Image by 愚木混株 Cdd20 from Pixabay


자아정체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것인데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나라는 느낌을 온전히 가지고 있을 때 자아정체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아정체감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이상적으로는 온전한 자아정체감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한 가지의 온전한 자아정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체성이라는 것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고, 자신의 경험에 따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내가 하는 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면 그래도 좋은 편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자아정체감도 만들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경우다.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자아가 갈라지는 경험을 한 경우,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 경우, 잦은 폭력으로 자아가 부서지는 경험을 한 경우, 그리고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겪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세뇌되고 만들어진 성장 과정을 겪은 경우 제대로 된 자아정체감을 가지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그렇게 어른이 된 경우 외형은 어른이지만 어린이보다 더 약한 정체성으로 방황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굴까?’라는 고민을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하게 되고, 이 세상에 대한 나만의 관점이 없이 흔들리게 된다.      


처음부터 자기(self)에 대한 개념이 흐린 동물의 경우는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도 정체성의 혼란 없이 괜찮지만, 인간은 자기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동물은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없어도 잘 먹고 잘 살지만, 인간은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살까?’라는 생각에 위기가 찾아오면 존재를 자체를 위협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타고난 신체와 두뇌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경험을 넓혀 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아정체감 형성에 중요하다. 흰색 도화지에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자아를 만들어가고, 세상과 부딪히면서 나에 대한 개념을 고치고 지우기도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자아를 잘 그려가다가 부모의 이혼이나, 폭력, 힘든 어린 시절을 겪는 경우 자아를 그리는 것을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벼운 성취와 실패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부모의 눈치만 보고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다 보니 그럴 새가 없는 것이다.     


Image by Mari Kanezaki from Pixabay


또한 자기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느껴야 자아정체감이 올바로 형성되는데, 공부 잘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거나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조건부의 어린 시절을 겪는 경우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아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게 성장하면 자아정체감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뭔가를 잘하려 하고, 잘하지 못하면 불안하거나 우울해지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자아를 형성해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라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평생 그렇게 믿고 지내면 그 자아정체감으로 잘 살다 갈 수 있겠지만 만약에라도 중간에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깨닫는다면 그동안 일관되게 형성하였던 자아정체감도 일순간에 무너지고 자아정체감이 제대로 없었던 사람보다 더 기나긴 방황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무난하게 어린 시절을 겪었고 무난하게 자아정체감을 형성하여서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느낌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알던 내가 맞는지, 내가 살면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어릴 때 자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사람보다는 방황이 길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어릴 때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자아정체감을 한 번에 만들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성격이 어떤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는지, 취향이나 관심사는 어떤지에 대해서 경험하다 보면 좀 더 안정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렸을 때 여러 가지 문제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어렸을 때보다 더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을 알면서 사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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