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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Feb 27. 2024

‘나’라는 존재를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학시간에 배운다. 인체의 세포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10년 전의 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고. 10년 전의 나를 구성하던 세포는 이미 없기 때문에 나는 이미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과연 그럴까?     



세포들이 바뀌기는 한다. 하지만 개가 털갈이를 하듯이 모든 세포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인체의 모든 세포가 짧은 주기로 다 바뀔 수 있다면 뇌출혈로 마비가 된 사람도 뇌의 신경세포가 재생되어 10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야 하고, 심근경색으로 심장 근육 세포의 일부가 죽은 경우도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정상 심장으로 뛰어야 하지만 인체는 그렇지 않다. 혈액 세포나 장의 상피 세포, 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처럼 ‘나’를 이루고는 있지만 매우 지엽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모두 바뀐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바뀌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들 위주로 바뀌는 것이고, ‘나’를 나라고 기억하고 과거에서부터 나를 움직여 왔던 뇌의 신경 세포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뛰고 있는 심장 세포, 평생 외부의 세계를 보아 왔던 눈의 일부 조직들은 10년이 지나도 거의 비슷하다.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조금씩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전의 세포들이 가지고 있던 정보나 특성들을 닮은 상태로 바뀌는 것이지,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나거나 다른 사람의 세포들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던 세포를 닮은 것들로 교체가 된다. 그래서 10년이 지나도 나의 성격이나 습관, 체질, 질병 등은 쉽게 바뀌지 않고, 10년 전의 내가 현재와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100% 다른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같지만 잎만 몇 번 바뀐 ‘80~90% 비슷한 나’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흑백 논리로 생각해서 ‘다르다’ ‘같다’로 접근하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라는 존재를 과연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질문도 마찬가지로 ‘있다’ ‘없다’로 접근하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나’라는 존재도 계속 변하는 것이고, 마치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나’라는 실체를 정의하려고 할 때 이미 ‘나’라는 실체는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세포 하나는 분명히 바뀌어 있고, 생각도, 기억도 바뀌어 있기 때문에 어제의 나를 ‘나’라고 정의하는 순간 오늘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제의 나를 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어제와 99% 비슷한 나라고 할 수 있고, 1%가 바뀌었지만 그 바뀐 1% 또한 오늘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어제와는 조금 다른 오늘의 나’를 ‘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Image by John Hain from Pixabay



무슨 말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나라는 존재는 계속 변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조금은 다르기 때문에 나!라고 딱 집어 정의할 수는 없지만, 10년이 지나서 90% 비슷한 것도 ‘나’이고, 20년이 지나서 80% 비슷한 것도 ‘나’이고, 80년이 지나서 20% 비슷한 것도 ‘나’라고 할 수 있다. 80%가 바뀌었지만 바뀐 80%도 오늘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바뀌었든지 바뀌지 않았든지 간에 “‘현재의 나’라는 존재는 있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실제와 근접한 결론이다.  

   


즉, 나라는 존재는 현재에 있다고 할 수 있고, 과거의 나는 현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과거의 나일 뿐 현재의 나와는 다르다. 과거의 내가 어떻든지 간에 과거의 상태로 두고, 미래의 나도 미래에 두는 것이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살아내는 방법일 것이다.




10년이 지나서 90% 비슷한 것도 ‘나’이고, 20년이 지나서 80% 비슷한 것도 ‘나’이고, 80년이 지나서 20% 비슷한 것도 ‘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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