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 번째 묵는 숙소는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게르였다. 몽골에는 곳곳에 게르가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글램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라고 하기엔 주변 경치가 너무 좋다).
깨끗하고 선명한 구름과 언덕, 초록색과 하늘색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내가 생각하던 몽골의 모습은 사막과 드넓은 지평선과 척박한 땅과 그곳에서 사는 유목민들의 거친 삶이었는데 이번에 본 몽골의 자연은 푸르르고 맑았다.
인구 대비 땅이 넓어서 태어나자마자 0.7 헥타르의 땅이 주어진다는 나라. 사면이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대부분 물자들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나라. 러시아 문자를 몽고 말로 읽는다는 나라. 칭키스 칸의 후손으로서 곳곳에 칭키스 칸의 흔적이 있는 나라. 우리나라 80-90년대처럼 생활하고 있는 나라.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말을 잘한다는 나라.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곳곳에서 한국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나라. 코로나가 끝나고 예능에 몽골 여행이 많이 나오면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오는 나라. 6월 성수기뿐만 아니라 예전에 안 왔던 겨울에도 여행이 핫해졌다는 나라.
우리가 배정받은 게르는 오르막길을 약간 올라가서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기본 고도가 1000m가 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쉽게 숨이 찼다. 캐리어를 끌고 올라서니 아래로 보이는 드넓은 초원과 나무가 없는 탁 트인 산, 그리고 산 위에 걸터앉은 바위, 반대편의 게르도 보이는 멋진 풍경이었다.
게르는 비교적 시설이 괜찮았다. 벌레를 싫어하는 와이프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벌레와 침대를 기어 다니는 아주 미세한 벌레를 보고 기겁을 했지만 나는 이 정도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팀에서 가장 젊은 사람을 뽑아서 위에 있는 게르를 주었다고 했다. 그럴만했던 것이 오르는데 생각보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좋은 건가?)
게르에서의 저녁은 양고기찜이었다. 큰 접시에 양이 뼈 그대로 삶겨 가득 있었는데 삶은 양고기를 그렇게 푸짐하게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몽골에 여러 번 오신 분들에 의하면 잡내가 없고 맛있는 고기라고 했다. 나도 원시인처럼 큰 뼈를 들고 뜯었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 원래 몽골 사람들은 반찬을 잘 안 먹는데 한국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함인지 열무김치와 부추 무침을 주셨는데 열무김치도 새콤하니 한국에서 먹어 보지 않은 새로운 맛이었고, 부추는 마치 풋마늘처럼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그렇게 양고기를 푸짐하게 먹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몽골에서는 해가 늦게 져서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다가 면세점에서 산 수정방을 깠다. 게르에서 먹는 수정방의 맛이란.. 그렇게 한 잔을 걸치고 해가 지자 캠프파이어를 했다. 큰 불 주위로 둥글게 모여 앉아서 타는 불을 바라봤다.
밤이 되자 별이 하나 둘 나타났고, 달이 있었기 때문에 쏟아지는 정도의 별은 아니었지만 몽골 게르에서의 별밤은 그런대로 괜찮았고, 나중에는 추억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후에 수정방과 에덴이라는 몽골 보드카도 먹고 취해서 그냥 자버렸다. 그리고 새벽에 별을 한 번 더 보려고 했는데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까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