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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Jan 10. 2023

여행은 갑자기 가야 제맛

-[MBTI] P의 안동 여행기


작년 10월 설악산과 부여를 다녀온 뒤로 2달을 넘게 여행을 가지 못했다. 부여를 다녀온 바로 그다음 날 와이프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입원과 퇴원을 한 다음 곧바로 둘 다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다.    

안동 현지에서 먹는 안동 찜닭

 안동 현지에서 먹는 안동찜닭� 후기|안동소주�는 인터넷이 싼 듯.. - YouTube


두 달이라고 하면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긴 시간이다. 매주 여행을 가도 풀리지 않는 나의 여행 욕구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도 1달 이상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과 회사만 반복하면 ‘이렇게 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존재론적 의구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그 주 목요일, 갑자기 ‘이번 주에 어디 갈까?’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경주가 후보지가 되었고, 가는 김에 장인어른, 장모님과 같이 가면 어떻겠냐는 와이프에 말에 바로 그날 경주 숙소를 2개 잡았다. 그런데 장인어른께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숙소를 다시 취소하고 그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이렇게 이번 주말을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가려고 했던 청송을 알아봤다. 하지만 청송에 괜찮은 숙소는 이미 자리가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청송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안동에 숙소를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전날이라 재빨리 안동 숙소를 알아보다가 안동의 한 고택에 자리가 하나 남아서 바로 예약을 했고, 토요일 일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안동으로 달렸다.     

보름달이 뜬 월영교 야경


그렇게 우리는 몇 달 만에 여행을 왔고, 지금은 안동 고택의 1평 남짓한 방,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선비가 공부를 하던 방이라고 했는데 와이프는 처음에 방이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런 데서 공부를 하면서 살지는 못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나는 이런 시골집에 익숙해서 괜찮았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방이 마지막에 남은 이유가 있었다. 좁기도 좁지만 바로 옆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손님방이 있었기 때문에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다. 옆방의 속삭이는 소리도 들릴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시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안동 찜닭을 먹고 사 온 안동 소주를 까서, 편의점에서 사 온 오징어와 과자를 안주 삼아 홀짝홀짝 마시다 잠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늦게 도착했지만 늦은 만큼 사람이 없는 고즈넉한 하회 마을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안동에 가면 헛제삿밥은 먹지 말라는 지인들의 권유에 선택한 안동 찜닭도 성공적이어서 좋았고, 저녁 늦게 간 월영교(月映橋; 달이 비치는 다리)에는 마침 새해 첫 보름달이 아름답게 월영정(月映亭)을 비추고 있어 그것 또한 너무 좋았다.     

안동 고택에서 바라본 아침 바깥 풍경

(Eng sub) 눈 덮인 아침 안동 고택에서 눈 뜨기 / Romantic korean house tour in winter - YouTube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고 있다. 옛날 안동 선비처럼 새벽부터 앉아서 글을 적으니, 물론 노트북으로 적는 것이지만, 올해 감회가 새롭다. 요즘에는 새해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는 무슨 일이 있을까 약간의 궁금증은 생긴다. 한 해 한 해는 살아서 가는 한 계단 한 계단과도 같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계단들이지만 지금 밟고 있는 이 계단이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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