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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Oct 08. 2022

결혼 유토피아

1.5인의 결혼 생활


    2017년에 내가 결혼에 관해 적은 글을 보았다. 글에 따르면 당시 내가 원하는 결혼 유토피아는 0.5인의 부인과 결혼하여 1.5인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일반적인 사람을 1이라고 본다면, 내가 1의 분량을 차지하고 부인이 0.5의 분량을 차지하는 결혼 생활을 말한다. 1의 부인을 만나면 삶이 괴로울 것 같고, 0의 부인을 만나면 삶이 외로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런 유토피아 세계에서의 결혼 생활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큰 특징은 서로에게 하는 기대와 간섭을 최소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청소를 하면서 부인에게 설거지하기를 기대하지 않고,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서로의 휴식 시간을 존중해준다. 누군가 텔레비전을 본다고 뭐라고 하지 않고, 게임을 한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자유와 애정을 적절하게 누리는 삶, 그것이 1.5인의 결혼 생활이다.

      

    그 후 나의 결혼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제로도 1.5인의 유토피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사실대로 말하면 2017년에 저런 글을 썼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쓰기 모임의 총무님이 당시에 이런 글도 있었노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새카맣게 잊고 결혼 생활을 했을 것이다. 1.5인의 결혼 생활이라.. 2명이 결혼해서 같이 사는데 어떻게 1.5인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가능하다.


    두 명의 사람이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1명과 1명이 만나 2명이 되었고, 2명이 결혼을 하여 같이 산다고 하면,

이렇게 서로의 간격이 가까워질 것이다. 1.5인의 결혼 생활은 한 사람이 0.5인이 되어야 한다. 즉,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0.5인이 되어야만 한다.

또는

이런 형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작아져서 상대방에게 맞추어 주거나, 상대방을 눌러서 작게 만들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형태가 바람직한 결혼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윗세대로부터 배웠다. 이런 방식의 1.5인의 삶에서 1이 되는 사람은 편하지만 0.5가 되는 사람은 힘들다. 대표적인 것이 강압적인 아빠와 참고 사는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가 0.5가 되고, 아빠가 1이 되었기 때문에 아빠는 1+0.5만큼의 안정감을 얻는 동시에 2-0.5만큼의 구속도 줄어들게 되고, 반대로 엄마는 결혼 전에 1로 살다가 결혼 후에 0.5로 살게 되면서 자신의 원모습은 온데간데없이 0.5만큼 남편을 위해 희생을 하면서 살게 된다.


    내가 말했던 1.5인의 결혼 생활은 이런 기울어진 관계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말했던 1.5(1+0.5)인의 삶은 지극히 불평등한 관계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내가 진정 원했던 1.5인의 결혼 생활을 그림으로 다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을 보면 1명 1명이 있지만 전체 크기는 1.5인의 크기가 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형성된 1.5의 크기가 아니라 각자의 비율은 유지하되 0.5만큼의 크기를 공통적으로 배려함으로써 형성된 1.5인의 삶이 된다.


    예를 들어 서로의 성격은 다를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공통적인 성격(0.5)을 토대로 각자의 다른 성격을 이해한다. 서로의 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단점(0.5)은 누구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초로 배우자의 단점을 이해한다. 음식의 취향은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 즉 교집합적인 음식(0.5)을 전제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다. 집안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 사람은 돈을 벌고 한 사람은 아이를 보더라도 둘 다 집안의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0.5)을 이해하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한다. 물론 모든 것을 정확히 0.5로 계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크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면 다른 한쪽이 도와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부부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크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면 다른 한쪽이 도와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부부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누구나 결혼 유토피아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나만 바라봐 주고,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이 결혼 유토피아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갈등이 생기면 서로 대화로 풀고,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것이 결혼 유토피아일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예전에 생각했던 결혼 유토피아와 근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너무 구속되지도 너무 자유를 추구하지도 않는 1.5만큼의 적당한 삶. 하지만 이런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런 결혼 유토피아를 갖고 배우자를 골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유토피아가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별다른 기대 없이 결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결혼 유토피아는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기대를 하는 순간 유토피아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결혼 유토피아가 없어졌을 때쯤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이다. 남편이나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꿀 때보다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느낄 때 결혼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결혼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그런 유토피아 같은 배우자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을 때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


현실에서 그런 유토피아 같은 배우자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을 때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





*커버 사진 - 작가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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