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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Apr 06. 2023

그 정도 동안은 아닙니다만..

오늘 있었던 일이다. 특강이 있어서 나는 강의실 맨 끝에 앉아 있었는데 2학년 학생들이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학생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4학년 선배님이세요?”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어 5초 정도 가만히 있었다.      


“교수입니다만..”     


말을 해 놓고도 민망했다. 3, 4학년 학생들은 내가 수업을 하기 때문에 내 얼굴을 아는데 2학년은 아직 내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베스트였을까. “네, 4학년 선배입니다.”라고 했어야 맞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동안이라는 소리는 못 하겠다. 예전에는 동안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나이고, 얼굴도 많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중학생 소리를 듣지 않나, 30대 초반까지도 술집에 가면 민증 검사를 하지 않나, 그때는 피부도 매끈하고 좋아서 동안에 자신이 있었고, 오히려 어리게 보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 동안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4학년 선배님이세요?”라는 질문은 민망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젊어진 느낌이랄까. 이제는 매일 '어떻게 늙을까?'를 생각하는 나이다 보니 젊음에 대한 감이 떨어졌는데, 뭔가 나를 리프레시해 줬다고나 할까.     



나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느끼면서 늙어갔겠지만 나 또한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았다. 계속 이대로일 것만 같았고, 열정이 있을 것만 같았고, 활력이 넘칠 것만 같았지만 아니었다. 오후 5시만 되면 피곤하여 쓰러질 것 같고, 만사가 귀찮고, 술을 먹어도 금방 녹초가 되는 늙음이 찾아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 주름이 많아졌고, 피부의 탄력도 잃었고, 잡티가 많아졌다. 뱃살도 나이를 먹어서 들어가지 않고, 근육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금방 쪼그라든다.      


어쨌든 그 학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그 정도 동안은 아닙니다만.. 감사합니다. 내년에 3학년이 되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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