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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Jun 17. 2023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65회 후기

직장인의 한능검 3급 도전 결과는? - YouTube


한국사를 이 나이에 공부할 줄이야. 고등학교 때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웠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의 목표는 일을 그대로 하면서 한 달 반 안에 3급 이상을 받는 것이다.


아침 6시 기상. 7시 반까지 출근. 12시 반까지 일. 점심을 먹고 5시 반까지 일. 그리고 저녁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저녁에 업무도 해야 하고, 회식이 있으면 그날은 공부를 할 수 없다.


학생 때와는 사뭇 다른 난이도. 학생들은 알려나. 나이가 들면 피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일이 끝나면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든다.



나는 문제집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문제집을 보면서 유튜브 강의를 들었다.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저녁에 퇴근을 하면 김밥집으로 가서 김밥을 사고, 와이프와 같이 차 안에서 김밥을 먹고 도서관에 갔다. 9시에 끝나고 집에 와서 씻으면 9시 반.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주변을 걸으면서도 이어폰으로 유튜브를 들었다.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를 다시 겪는 느낌이다. 울분이 생기기도 하고, 옛날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력은 확실히 10대 때에 비해 좋지 않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10대 때에는 한 번 봤던 이름이나 단어도 머릿속에 어느 정도 남았지만, 지금은 모래사장의 발자국이 파도에 씻겨 없어지듯 금방 없어져 버린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공부를 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체력도 없고, 기억에는 남지 않는 서러움.



시험을 치기 전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고 아침 일찍 학교로 갔다. 시험 장소는 내가 토익 시험을 쳤던 곳. 고사실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세 번째에 들어온 사람도 1시간 일찍 들어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를 떨며 공부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수험표를 출력해 오지 않아서 시험을 못 치고 돌아갔다는..


시험 감독은 20대 교사 같았는데 어제 이별을 한 듯 우울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조금만 건드려도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답안지를 나눠주고, 수험생들의 얼굴과 신분증을 대조한다. 교실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도 보인다. 대부분은 20대 여자가 많았다. 아마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직을 준비하는 것이겠지. 나는 교실에서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시험지가 컬러라는 게 문화 충격이었고, 시험지를 갖고 나간다는 것이 신선했다. 우리 때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10시 20분에 시작해서 11시쯤 되니 한 명씩 나가기 시작했다. 토익은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갈 수 없지만 한국사 시험은 토익에 비해서 뭔가 여유로운 느낌이다. 시험 시간도 빡빡하지가 않고 가방이나 휴대폰도 제출하지 않는다.


4500달러짜리 글렌피딕은 어떤 맛일까


끝나고 와이프와 백화점을 갔다. 공부하느라 못 샀던 신발을 사고, 면세점에서 양주를 샀다. 과연 다음 주에 마음 편히 대만을 다녀올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한국사는 3급을 받을 수 있을까.


집에 오자마자 시험지를 매겼다. 정답은 한능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생각보다 시험이 어려웠던 것 같아 마음을 졸였지만 결과는! 합격. 다행이었다. 이 공부를 다시 하라면 이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 같아 걱정이 됐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와이프가 축하 기념으로 집에서 월남쌈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한국사 시험도 끝났겠다 우리 학생들 1학기 성적을 정리했고, 와이프와 월남쌈에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월남쌈 전문점보다 더 전문적인 와이프표 월남쌈


우연찮은 기회에 한국사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국사 공부와, 사회생활을 하고 인생을 어느 정도 안 시기에 했던 한국사 공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생활, 인생, 그리고 역사의 흐름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고통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받은 시험 점수 이상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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