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역사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만약’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시기, 그 시기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트라우마가 아닐까. 그리고 그 단추가 그대로 분단으로 이어지고, 현재의 대한민국과 북한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에 그 ‘만약’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약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아니 오히려 조선이 일본을 지배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이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서양을 만난다는 조건, 또 하나는 조선의 지배층이 빨리 정신을 차린다는 조건.
조선은 이미 첨단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던 경험이 있다. 비록 서양이 침략했을 즈음에는 기술이나 국방력이 많이 쇠퇴하긴 했지만 충분히 능력 있는 인재들과 기술을 발전시킬 잠재력이 있었다. 지금의 한국을 봐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내놔도 전혀 뒤지지 않는 능력이 있는 민족의 뿌리가 바로 조선이다. 일본보다 먼저 서양의 기술이나 무기를 접했다면 조선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었을 것이고, 빠른 기술의 습득과 국방력의 강화로 제국주의 시대에일본에 앞서 세력을 확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은, 아니 삼국 시대부터 우리는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해 주는 입장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일본은 조선의 은 추출 기술을 가져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그것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뒤에 조선의 도자기 기술도 가져가서 세계적인 부를 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조선의 지도층이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이런 이점을 일본에 내주지 않고 조선 내에서 발전시켰을 것이고,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서양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강화도 조약으로 시작되는 일련의 불공정한 조약을 맺게 되는 배경에는 조선 지도층의 무능함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서양을 늦게 접했기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개혁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만약 올바른 시대적 안목을 갖고 있는 인재들이 재야에 묻히지 않았다면 그것이 조선의 주류 의견이 되었을 것이고, 후에 서양이 왔을 때 발 빠르게 대처했을 것이다. 오늘날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면 그 저력이 사장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양의 배가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침략하려고 왔다면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에게 하나씩 권리를 내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예전 양국의 관계처럼 일본이 조선의 도움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면 조선이 일본을 지배하는 시나리오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일본처럼 식민지를 잔인하고 악랄하게 지배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당시 조선의 성격을 보면 다른 나라를 철저하게 수탈하고 파괴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였다면 그것은 서양의 제국주의를 상대로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이나 상업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근대화를 이루고, 서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청이나 일본과 여러 가지 협정을 맺고 정책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서양이 했던 것처럼 약탈을 위한 식민지가 아닌 조선만의 방식으로 식민지를 다스렸으리라 생각한다.
1·2차 세계대전이 필수불가결한 역사의 흐름이었다면 조선도 그 흐름 속에서 자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물론 전쟁이 불가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대한민국, 즉 피를 쪽쪽 빨리는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된 6·25 전쟁과 분단을 겪고도 이렇게 대국이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지금보다 더 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지만 역사는 ‘가정’을 할 수 없다. 역사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만약’이나 ‘~ㄹ 것이다’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봄으로써 지금 현재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세우고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는 지나고 나면 잊히는 경향이 있다. 지금 한국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6·25 전쟁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단이 어떤 의미인지, 일제 강점기를 왜 겪어야 했는지 점차 잊고 있다. 이미 수십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이름과 시기만 다를 뿐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