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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Aug 10. 2023

낭만에 대하여


나이가 들수록 낭만을 잊어간다. 낭만도 여유가 있어야 낭만인데 요즘은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낭만은 비 오는 날 풍경을 내다보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것이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엔 온통 현실과 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있고, 꿈과 낭만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낭만을 위해서는 먼저 비가 와야 한다. 얼마 전 장마가 지독히도 왔던 때가 있다. 하루를 고사하고 밤낮으로 비가 내렸고 수해도 많이 일어났다. 그런데 우리 집은 아파트라 비가 멀게만 느껴졌다. 빗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비 오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창문을 열면 들이치는 비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못했다. 비 오는 것을 잘 구경하기 위해서는 처마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내 주위에는 처마조차 없었고, 술로 낭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여유도 습관 같은 것이라 비가 오고 그것을 구경할 기회가 생겨도 막상 가만히 앉아서 있는 것이 힘들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쳤다면 풍경을 내다보며 여유롭게 앉아 있으면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게 되거나 얼른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셋째, 그렇다고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것은 아니다. 할 일이 있어도 당장 하기 싫고 미적거리는 여유를 부리다가 마감일이 다 되어서 하게 되는 건 꼭 누군가의 장난 같다. 미적거릴 여유는 있지만 낭만을 즐길 여유는 없고, 마감일 전까지 마음속으로만 바쁘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바빠도 하기 싫을 때는 안 해 버리고, 할 일이 끝나서 시간이 있을 때는 여유를 부릴 법한데도 나태한 내가 보기 싫어 일을 만들어서 하는 모순을 범한다.

    

낭만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최백호의 노래. 최백호 씨는 비가 오는 날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색소폰 소리를 듣는 것이 낭만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와도 비슷한 낭만이다. 그는 비 오는 날에 다방에 앉아 있고, 나는 비 오는 날에 처마 밑에 앉아서 낭만을 즐긴다. 노래를 들어도 좋고, 술을 마셔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여유가 나에겐 낭만이다.



* 커버 사진 - publicdomainpictur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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