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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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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Mar 25. 2021

나보다 먼저 떠날 너에게

삶의 유한함,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3월의 봄과 함께 로이도 한살을  먹었다. 강아지는 사람 나이의 7배라고 하니 이제 6살이  로이는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마흔 둘인 셈이다.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채로 우리 가족에게 왔는데 어느새 불혹을 맞이한 중년의 아저씨가 다니.. 시간도 참 빨리 간다. 아저씨에게도 봄은 봄인지 창문 사이로 살랑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코를 벌렁 거리고  쳐져 있는 꼬리를 열정적으로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얘는 아마 노견이 되어도 봄만 되면  세계를 탐험할 기세로 코를 킁킁 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깥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 녀석과 함께 집콕생활을 한지도 일년이 되었다. 충격적이었던 락다운이 처음 시작할 당시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것은 어느 순간부터 ‘코로나 덕분에'로 바뀌었다. 집에 있으면서 로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부터였다. 쪼개고 쪼갠 시간 속에서 정신없이 일어나 반쯤 감긴 눈으로 출근을 했던 나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멈추었던 날. 보통 출근을 해야할 시간에 아직도 집에 있으니 로이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빤히 쳐다봤다. 


어랏, 뭐야. 너 하루종일 집에 있는거야? 


(꺄~ 계 탔다!)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인 로이. 집콕 생활 최대 장점은 로이와의 관계가 한층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알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로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로이도 내 목소리 톤으로 나를 읽는다. (때론 남편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_-;;) 물론 이 스킬은 나를 이해하데 보다 산책을 나갈 신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쓰이지만 서로의 사소한 행동의 뜻을 알아 차릴만큼 코로나 기간을 통해서 로이와 나는 서로의 삶에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나의 셀프 이발 후 나름 늠름한 모습으로 변한 로이

   남편과 나는 종종 얘기한다. 우리에게 로이가 있어서 행운이라고. 로이가 없었더라면 지난 1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갑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해야 했던 로이 산책이 내 숨통을 틔어주는데 한 몫 했다. 하루에 세번씩 때가 되면 밖에 나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코로나 뉴스로 어지럽혀진 머리를 식혔다. 코로나 전, 로이 산책은 꽉꽉 채워놨던 스케줄 틈 사이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짜증스런 의무였는데 시간 부자가 되니 데이트로 바뀌었다. ‘그래, 너가 맡고 싶은 냄새 다 맡아라. 어차피 해야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로이가 냄새 맡고 싶은 곳에서 충분히 있게 해 줄 수 있어서 그런지 녀석의 발검음이 한결 가벼워 진 듯 했다. 


    산책 나갈 때마다 정신사납게 모든 곳을 후비고 다녔던 녀석은 코로나 락다운 시작으로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 나와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속도로 세상을 느낀다. 물론 아직도 줄을 잡아 당기며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갈때도 있지만 이제는 로이와 나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는 훨씬 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에 나선다. 과학자들이 이미 증명한 산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눈에 차곡차곡 담아 놓는 즐거움도 만끽하니 로이에게 더 감사할 뿐이다. 


    봄의 기운을 알리는 힘찬 새들의 노래소리, 뜨거운 태양을 피해 찾았던 시원한 녹색 그늘, 사각사각 낙엽 소리와 함께 오색빛깔 찬란하게 빛났던 가을 하늘, 아무도 걷지 않은 눈 길위에 처음 남긴 내 발자국과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코요태까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 로이로 인해 탄생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늦잠 자느라 몰랐을 자연의 존재를 매일같이 느끼며 산다.


    겨울의 어느 토요일 아침, 평소와는 다르게 로이와 함께 소복히 눈이 쌓인 언덕을 올랐다. 보통 우리의 산책로는 아니었지만 멀리서 본 언덕위로 떨어지는 햇빛에 끌려서 오르게 된 길이었다. 겨울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푸르렀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내쉬니 온 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동이 트는 고요한 순간을 로이와 함께 가만히 지켜봤다. 마음이 벅차 올랐다. 따스한 겨울 햇살과 함께 정적이 흘렀던 공원의 아침이 깨어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로이와 내가 있었다.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경이로운 순간. 이 순간의 기억을 들숨과 날숨을 통해 내 몸에 새기고 싶어 조용히 눈을 감고 얼굴위로 떨어지는 햇빛을 느꼈다.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지길 바래 봤지만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거란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조금은 슬퍼졌다. 그래서 그런 걸까. 떠오르는 태양 위로 로이와 이 세상에서 함께 사는 시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내 마음에 꽂혔다. 눈물이 차오르기 전에 언덕을 내려왔지만 이 날 이후로 종종 떠올려본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로이와의 이별을.


    슈나우저 평균 수명이 12-14살이라고 하니 건강하게 산다면 로이는 앞으로 길어봐야 6년에서 8년정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에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곳곳에 숨어있다지만 별 탈이 없다면 아마 나보다 먼저 떠나게 되겠지. 노견이 된 로이는 어떤 모습일까. 나와 남편은 로이와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왜 먼 훗날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사서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반려견과의 이별을 상상해봄으로써 앞으로 로이와 남은 삶을 어떻게 살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 살기 위해선 죽음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정재승 박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소중한 일들에 집중하게 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고, 선택의 무게도 훨씬 가벼워 진다’고 말하며 결정장애를 겪을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산책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아니, 종종? ㅎㅎ) 로이를 데리고 나가기 귀찮을 때면 어김없이 깊은 딜레마에 빠지곤 했다. ‘산책을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제 외침에 아주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았다. ‘메멘토 모리! 난 산책을 택하리라!’ 마법의 주문같은 말을 외치고 나면 목 끝까지 올라왔던 화딱지가 한풀 꺾인다. 보채는 로이에게 꽥! 하면서 소리 지르기 전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고, 결국 ‘스릉흔드 이 녀석아!'라고 말하고 산책길에 나선다.


    하루에 세번이나 나가면 따분해 질법도 한데 얘는 금붕어의 메모리를 가졌는지 매번 나갈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 신나한다. 그렇게나 좋을까. 밖에 나오면 한치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몇시간 전 볼일을 봤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코를 파묻고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 마냥 열심히 냄새를 맡는다. 없는 오줌 방울을 끝까지 쥐어짜내며 기어코 하내고 마는 영역표시는 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앞에서 로이는 아마 당당하게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나무 앞에서 오줌을 확실히 싸 두리라!’ 어쩜 그렇게 일관된 모습으로 진심을 다해 산책을 하는걸까. 볼때마다 신기할 뿐이다. 나보다도 먼저 메멘토 모리의 개념을 온 몸으로 이미 실천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삶의 매 순간을 그 처럼만 살아도 잘 산 인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자기 삶에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인생. 오늘도 로이를 통해 삶의 한수를 배운다.  


    메멘토 모리.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사실은 슬프기도 하지만 이 사실이야말로 삶을 더욱 더 찬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쳇바퀴 돌리듯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생활에 죽음을 소개하니 따분하기만 했던 순간들이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한다. 따스한 봄 바람을 맞으며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에서 로이와 함께 청한 낮잠, 기어코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은 삼겹살 랩이 이틀 뒤 녀석의 똥과 함께 몸을 탈출한 일,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로이의 따스한 온기, 문을 열고 집에 돌아 올때면 언제나 ‘왜 이제 오냐’는 울음과 함께 한결같이 힘껏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던 수 많은 날들, 그리고 셀 수도 없이 같이한 산책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던 순간들.


지난 6년동안 로이와 함께 한 시간 덕분에 나는 추억 부자가 되었다. 자칫 무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던 삶에서 오히려 단조로운 일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유한함에 대한 가치를 가르쳐준 로이에게 앞으로 나는 어떤 보호자가 되어야 할까. ‘메멘토 모리’를 되뇌이며 고민해 본다. 나보다 먼저 떠날 녀석에게 남은 시간동안 부끄럽지 않은 보호자가 되자고 다짐해보지만 일에 지쳐 몸과 마음이 돌덩이 처럼 무거운 날에는 나의 야심찬 다짐은 수포로 돌아간다. ‘메멘토 모리고 뭐고 그만 좀 짖어! 알겠다고!’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오늘도 로이와의 이별을 상상한다. 로이의 마지막 순간에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널 수 있길 바라면서, 그리고 로이가 없는 삶을 맞이 했을 때 일상을 빛내주었던 소소하지만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열두 발자국>, 정재승, 어크로스, 두번째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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