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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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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Sep 27. 2021

<월든>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자연 속에서 갖는 힐링타임

울창한 숲 속에서 따스한 동쪽 햇살의 속삭임에 눈을 뜨며 맞이하는 아침. 짙고 어두운 밤에 고요했던 새들도 하나둘씩 깨어나는지 동트는 하늘과 맞물려 지저귀기 시작한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덕분에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폐 속 깊숙한 곳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매년 여름 연례행사처럼 남편과 나는 친한 지인과 함께 캠핑을 간다.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맞춰 며칠 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 속에 쌓아두었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어느덧 녹아내린다. 물론 잠자리가 불편하고 먹기 위해서 할 일이 두배로 많아져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된 부엌 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인터넷도 안된다니. 생활하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지는 캠핑 라이프는 보통 3박 4 일면 충분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2년 차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락다운 연장전은 몸과 정신 곳곳에 상흔을 남겼다. 혼잡한 도시로부터 더 오랫동안 벗어나 있고 싶었다. 특히나 꼼짝없이 일 년 동안 재택근무를 해야 했던 남편은 나보다 더 간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더라도 하루 더 보태서 4박 5일, 좀 더 깊숙이 푸르른 세계에 머물다 오기로 결정했다. 자연만큼 좋은 마음 정화제가 없으니까.



캠핑 라이프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지인이 준비한 중남미식 브런치를 먹는다. 볶은 검은콩, 고소한 버터에 요리한 달걀 프라이, 그리고 나의 최애인 튀긴 플란테인까지. (*바나나와 비슷한 과일) 갓 내린 커피와 함께 먹으면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은 식사가 된다. 그냥 먹어도 맛있을 음식인데 나무에 둘러싸여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먹는다니.. 맛이 세배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배를 든든하게 책임져 주었던 푸짐한 아침식사.


식사를 정리한 후 오후에는 물놀이를 한다. 호수에서 나오면 나른한 오후 햇살이 우리를 맞이한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선선한 바람에 잔잔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나무는 환상적인 자장가가 되어준다. 달콤한 낮잠에서 일어나면 벌써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다시 테이블을 세팅하고 정성 들여 차린 밥을 먹는다. 후식을 위해 캠프 파이어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군고구마나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휘청거리며 춤추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마음이 차분해진다. 빛 공해가 없이 완연히 어둑해진 밤하늘 위로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은하수가 펼쳐지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의 경이로움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울렁이는 마음을 간직한 채 텐트에 들어가면 오늘 하루도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만족감에 젖어 잠을 청한다.


다음날도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된다. 물놀이 대신 해먹에 누워 오랜만에 생긴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그네처럼 앞뒤로 잔잔히 흔들리는 해먹 위로 푸르른 나무를 보니 눈이 저절로 정화되는 것 같다. 느긋한 마음으로 높고 길게 뻗은 가지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나무가 인간의 폐와 너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음에 놀란다. ‘나무와 인간은 50% DNA를 나눠 가졌다는데, 사실이었구나!’ 자연에 있으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놓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숲 속에 들어가 문명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일까.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대학교 때 처음 접했던 이 구절에 갸우뚱했던 것이 기억난다. 유명하다고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첫 챕터를 읽다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식인이 되고 싶은 혀영심에 오기가 생겨 읽고 또 읽어 봤지만, 그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머리는 내게 없었다. 속세를 떠나 고요한 숲 속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 실험했던 유별난 철학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내 삶에서 멀리 했던 책이었는데 캠프 파이어를 보며 불멍을 하고 있자니 불현듯 이 구절이 떠오른 것이다. ‘아! 이래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숲 속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거구나!’


캠핑 생활은 먹고 자는 것 밖에 하는 것이 없는데도 바쁘고 충만한 하루가 된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쉬고. 오히려 반복적인 일상의 단순함은 복잡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충분히 쉬고 나서는 또다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며 음식 준비에 들어간다. 여기서는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숨 쉬며 하는 모든 활동이 노동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할 시간이나 SNS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겨를이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낮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으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이 더 낫다. 결국 도시 속에서는 그렇게 내 손을 떠나지 않았던 핸드폰이 여기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매 끼니를 푸짐하게 차려 먹는데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때가 되면 정확하게 울리는 배꼽시계는 새삼 ‘먹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바쁜 일상에서는 먹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쓸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이 느려진 자연 속에서는 다르다.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저절로 던져진달까. 삶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충실하다 보면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누군가는 철학자 놀이에 빠졌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철학적인 사고의 순간들이 빛났던 4박 5일 동안의 쉼을 통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 본 기분이다. 더불어 <월든>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높기만 했던 그의 심오한 철학의 장벽에 수줍은 발을 들여놓아 본다. 책에도 타이밍이 있는 것인지 십 년이 지난 이제야 그의 책을 마주할 마음이 준비되었다. 게다가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지 않나. 나무가 알록달록한 새 옷을 입을 준비를 하며 선선하고 쓸쓸한 바람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오늘, <월든>의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휘영청 밝게 온타리오 호수를 빛내던 달.
낮잠은 로이처럼~ 텐트에 완벽하게 적응한 사랑스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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