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대상

누구도 다치지 않게

by 웬디

애청하던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 아이들은 이상한 게 아니니 나무라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아이들을 너무 쫀쫀히 보고 부모의 기호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를 멈추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럼에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이 어쩐지 내내 음에 걸다.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아이를 이상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아이를 이상하다고 단정짓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 아닌가.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다. 학생 시절 도사 같게만 느껴졌던 선생님들도 실은 아니었던걸까. 그 분들 만큼이나 경력이 꽤 쌓인 지금도 아이들의 속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특성로도 그 아이와 아이의 주변인이 겪을 나중의 일이 걱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힘주어 주장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은 실제로 다 다르다. 그런데, 모두가 다른 아이들 중 유난히 다름이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결'이거나 취향이거나 태도이거나 말이거나 때로는 패션이기도 할 만큼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아이가 지닌 독특함이 개인적인 특성이라면 내 판단은 오케이다. 독특한 예술세계를 가졌다거나 한 분야에 몰두해서 깊이 파고드는 공룡 박사 같은 경우가 그렇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엇이 문제랴. 개성과 깊이가 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지닌 독특함이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특성이라면 다른 문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만한 일은 즉각 멈야 한다. 나무라야 한다. 나무랄 뿐 아니라 가능한 러 방법을 동원해 멈추게 해야 하는 게 보호자의 역할이며, 가정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 귀한 아이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또한 누군가의 귀한 아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억제는 결코 아이를 괴롭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자라서 독립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아직 사회를 잘 모르지만 잘 모르는 사회 속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에게는 콘트롤 타워가 필요다. 너의 이 말과 이 행동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따끔한 친절이 필요하다. 아이가 하지 않아야 함을 알고 결국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까지 꾸준히 훈육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존중하는 길이다.


모르고 시작한 일이 오랜 기간을 두고 반복되다가 어느 새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면, 잘못된 일이란 걸 알고 그제야 돌이키고 싶지만 이미 돌이키기 어렵다면, 그 인생의 주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존중은 아이의 가시 돋친 말과 행동에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힘들어도 잘 극복해내 타인과 행복하게 어울릴 그 날의 아이를 향해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심으로 모든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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