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by 웬디

울었다. 그리 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가 아닌, 몇 년 만에 어쩌다 만난 지인 앞에서. 몰랐다. 내 슬픔이 그리 찰랑거렸는지.


내년에 학교를 옮기게 된다. 관외 전보를 신청했다. 아마도 집에서 꽤 먼 곳이 될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걱정을 해주었다. 한 번 가면 집 근처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릴텐데 괜찮겠냐고. 그 분들의 이야길 듣고서야 내가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내년에 옮겨갈 그 학교가 내 인생 마지막 학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저 교직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나를 향한 애정어린 걱정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으리라. 아주 오랜만의 만남이 나 때문에 무거워지는 것은 싫어서 일부러 별 일 아니란 듯 짧게 답한 것이었지만, 그 짧은 한 문장을 전하는데도 목소리가 떨려와 그 떨림을 감추느라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타는 듯 뜨거운 목구멍을 식혀보려는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더 나누다가는 끝내 울어버렸다.


불안을 안고 사는 게 힘 것 같아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다면 그 일이 해결되면 차라리 괜찮아질텐데, 아무 실체 없는 이 불안을 안고 사는 게 힘들어요. 오늘까지 무사히 지냈어도 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계속 안고 살고 싶지가 않아졌어요.


듣고 있던 지인 중 한 분이 물으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너를 좋아하지 않아? 네, 좋아해요. 그 대답은 쉬웠다. 리고, 저도 좋아해요.


정말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줬다. 맑고 순수한 영혼들은 이렇게 부족한 사람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다.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 마음 마저 없었다면 나는 여태 학교에서 지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좋아했다. 물론 힘든 날들도, 힘든 아이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뻤다. 감히 사랑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툴렀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사랑이었다고.


그런데 나와 아이들의 관계와는 상관 없이 내 안의 불안은 늘 찰랑댔다. 어제까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아이였어도,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의 보호자님이 찾아와 내게 언성 높이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눈치 없는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번지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참 어른답지 않고 애 같기만 한 사람인데 어느 날 다 들켜버리는 게 아닐까. 언론에서,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은 이미 내가 가졌던 불안을 증폭시켰, 우 참고 참아 오다가 이제 더는 견디고 싶지 않은 시기가 오고 말았나보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나의 부족함이 더 커보였다. 나는 왜 상황을 조망해서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할까. 나는 왜 이리 눈치가 없을까. 나는 일처리가 왜 이리 늦을까. 나는 왜 이리 일머리가 없을까. 수업도 별로인 것 같고, 지식도 부족한 것 같고, 아이들에겐 어른이 필요한데 나는 어른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고...


이런 사람이 교사로 있느니, 차라리 내가 이 자리를 비워주면 누군가 능력있는 교사가 들어와 아이들에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지인들은 그건 부족함이 아니라 신중함이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예전의 넌 아이들과 일대일 데이트를 하면서 따뜻하게 관찰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불안해서 관찰한다고 이야기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때의 를 좋게 봐주셔서 그렇지 그 때의 나도 불안해서 시작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눈치가 없고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캐치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 알아야 하는 일을 내가 모를까봐, 아이가 말해야 할 것을 못 말할까봐, 언젠가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려면 쉬운 이야기라도 우리 사이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시작했던 거라고.


그 때와 다른 점은 있다. 그 때는 내가 내 모양대로 아이들을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오순도순 지내는 내 모습을 내가 높이 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교사는 어른 같아야 하고 능력 있어야 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고 판단해야 하며 지식이 출중하고 수업이 막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과거의 어느 시점엔가는 경력이 쌓이면 도달하게 될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상황 판단이 빠르고 업무 처리도 시원시원하며 수업도 똑소리나게 잘하시는 저연차 선생님들을 보며 그건 길러지는 게 아니라 타고 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애석하게도.


그러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불안을 벗어나고 싶어서 했던 생각이 이제는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얼마 전 가까운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말하는 건 그냥 그렇게 말하다 말 푸념 같은데, 선생님은 진짜 가까운 미래에 그만 둘 것만 같다고.


지난 학교에서의 나와 최근의 나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다가 는 지금 교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랬다. 전에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사랑해주며 함께 하는 존재, 좋은 경험을 준비하고 제공하는 존재여도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나를 용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로 충분치 않고,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은 필요 없고, 교사란 능력 있고 그릇이 큰 어른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어디쯤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함께 한 지인 중 한 분이 내게 교원 치유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특별한 사건을 겪은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서 밀리더라고 말씀드리니, 그렇지 않은 상담도 있다고 했다. 그런 상담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한때 상담자를 꿈꿨지만, 그보다 먼저 내담자가 되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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