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평가에 관하여
중학생이 되어 시험을 처음 보니 적응을 잘 못한 학생들의 점수가 잘 안 나온다고들 한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시험을 시작하는 시기를 당기면 되는 문제일까. 중학교 첫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잘 겪어야 좋은 결과에 이른다. 과정을 잘 겪는다는 의미는 다양한 실패와 회복의 과정을 아우른다.
나는 내 아이를 포함하여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실패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통해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울 것이며, 그 배움을 딛고 그 위에 그들의 삶을 쌓아갈 것이다. 실패의 시기마다 남겨진 얼룩이며 눈물자국이며 때론 원망이며 다짐들이 그들 삶의 지문이 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모든 잘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잘 못했던 시절이 있다고. 그 시절을 지나 잘하는 시기에 접어들게 된 거라고. 연주자들이 그럴 것이며, 무용수들이 그럴 것이며, 무언가를 잘하는 모든 이들이 그럴 것이다. 아직은 미숙한 어린 시절의 그가 악기를,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숙한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 그를 이만큼 성장시킨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켜켜이 쌓인 실패들이 그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을 거라고.
넘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흐트러져야 비로소 보이는 또렷함이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들에게 반복의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과정은 여러 과업의 연결이었다. 이 내용의 학습이 끝나면 다음 내용으로 건너간다. 반복하고 싶어도 좀체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빈틈없이 성실하게 진도를 나가야만 학기가 끝나기 전 겨우 진도를 다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반복을 통해 성장해가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그래서 창체 시간을 활용해 오일파스텔화를 시작했다. 봄이면 봄 풍경을, 여름이면 여름 풍경을, 가을이면 가을 풍경을, 겨울이면 겨울 풍경을 그렸다. 한 작품의 크기가 엽서만 해서 한 시간에도 여러 번 도전할 수 있고, 일 년으로 봐도 네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계절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차 익숙해졌다. 가을쯤 되니 내 설명 없이도 제법 능숙하게 작품을 완성했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쉬운 건 아니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목소리 높여 짜증을 냈다. 선생님, 저는 못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차피 못할 거니까 그냥 안 하는 게 나아요. 안 할래요!
늘 백점 맞는 아이였다. 늘 벽돌책을 들고 다니며 책의 두께와 자신의 지식의 두께를 자랑스러워 하는 아이였다. 실패와 성장의 경험을 주고자 계획했던-다른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 시간이-그 아이에게는 고통스러나보다. 아마도. 아이 말을 듣고 생긱해보니 그랬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점 맞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시간.
백점 맞을 필요도, 이유도 없는 시간이었음에도.
그 아이 기분이 좀 환기가 되었을 즈음 아이에게 다가갔다. 늘 하던 말이지만 새로 또 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잘못해도 돼. 네 말대로 어차피 잘 못할 거니까 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지만, 잘 못하더라도 시도하면 조금씩 나아져. 선생님은 시도하는 게 포기보다 백배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도저히 못하겠으면 도움을 청해봐. 우리 반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어. 선생님이 도와줄까?
아이는 도와달라고 했다. 흰색 파스텔을 들어 아이가 그린 밑그림의 면적을 넓히고 그 안을 아이가 색칠하도록 했다. 색칠할 때 어느 정도 세기로 해야하는지 다시 설명하고, 색칠한 후 몽글몽글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다시 알려주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몇 군데는 손을 봐주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도록 했다.
한참만에 다시 가보니 제법 멋진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표정에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막상 시도해보니 할 만 하지? 물으니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아이는 성공만 해본 아이보다 단단하다.
지방 소도시지만 교육열이 꽤 높은 동네에 오니 이 아이 뿐 아니라 완벽함에 갇힌 아이들이 더러 있다. 아이들은 때에 따라 주어지는 과업을 완벽히 해내야만 한다. 급수 시험, 영재원, 선행학습, 심화 문제집... 때로는 엄마표 학습도. 그 과정의 어느 하나가 어그러지면 평생의 계획이 무너질 수 있는 아찔한 길을 아이는 모르는 새 걷고 있다. 그 길 위에선 추락하지 않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에게 완벽이 요구된다. 물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태도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완벽은 다른 이야기다. 때로는 사회로부터 아이를 완벽히 지키려는 노력이 아이를 완벽함에 가두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순결하고자 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을 티비나 게임에 오염된 것처럼 여겼다. 세상을 완벽히 차단하고 자신과 타인을 흑백으로 구별짓는 것은 미디어를 절제하는 (권장되는)태도와는 또 다르다.
초등 시기에 시험이 시작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완벽하길 요구받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엔 때가 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직 실수하고 실패해야 할 때다. 완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숨 쉴 틈, 웃고 떠들 시간, 안전하고 온전하게 존재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가장 빠른 시기 말고 가장 적당한 시기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