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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 Jul 20. 2024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요리 생초보 엄마의 집밥 도전기

시작을 겁내는 첫째는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이번에는 잘 다니던 방과후 탁구가 싫다고 했다. 대결을 하면 꼭 그 중 몇 판은 지는 일이 생기니 그게 스트레스라서 대결을 안하고 싶은데, 매일 대결을 시키니 그만 두고 싶다고 한다.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지는 게 싫단다. 얼핏 같은 것 같지만 엄연히 너무 다르다. 나도 안다. 내가 잘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일을 해나가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건지. 얼마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느낌인건지.


그 길에서 나는 주로 회피 선택해왔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제법 커버린 첫째종종 이 종류의 이야기를 나눈다.

틀리지 않아야 잘하는 건 아니야. 피아니스트 열음 이모(몇 년 전 TV에서 함께 인상 깊게 본 연주)엄마보다 피아노를 더 많이 틀렸을 거야. 엄마보다 훨씬 더 많이 연습했을테니 더 많이 틀렸겠지. 많이 틀리고 많이 실패하면서도 꾸준히 연습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잘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잘 못했던 시간을 지나왔던 거야. 처음부터 결과인 사람은 없어.


참... 세상의 엄마들은 늘 맞는 말만 한다. 나도. 그런데, 과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나.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여러 주제로 매일 인증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했다. 새로이 멤버를 모집한다는 안내가 있기에 들여다 보았는데 그 주제 중에 집밥이 있었다.


망설여지지 않았다. 내가 직접 과정이 될 차례였으니까. 만나기만 해봐라, 그럼 내가 걸어가리라 했던 그 길이 감사히도 적절한 때에 딱 내 앞에 놓였다. 츠 마이 턴.


홀리듯 시작한 집밥 커뮤니티를 통해 요 며칠 매일같이 집밥을 실천하고 있다. 모두가 나 같은 케이스일 거란 내 짧은 생각과 달리 커뮤니티 구성원 대다수는 실력자였고, 올라오는 인증샷을 볼 때마다 그 퀄리티에 압도되었다. 아, 이런 것도 만들어서 먹는 거였구나! 나는 그 분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일 처지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결심이 앞서 나도 어느 새 그 곳에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왕 시작한 거 그저 나의 길을 걸어가리라 마음을 고쳐 먹었다.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리 부끄럽지 않았다. 실력 차가 웬만해야 그런 마음이 들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면 부끄럽지도 않은가보다. 각종 베이커리, 갖가지 브런치 메뉴들, 식당에서 팔 만한 메인 메뉴들이 즐비한 중에 나만 홀로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볶음밥 등 생활 밀착형 메뉴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그래도 매일 음식을 한다는 게 어디랴. 결과물의 퀼리티와 하등 상관 없이 요즘 내 아침은 무척 뿌듯하다. 그리고, 매일의 집밥 인증 여정 가운데 나는 낯선 삶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나이에도 처음인 것들이 있을 줄 몰랐는데 어라, 이거 처음인데 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뿌듯함은 기본이고 신선하고 즐거웠다.


하나. 인증을 하려고 보니 평생 들여다보지 않던 요리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다.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만들 음식의 레시피를 뒤적이다 잠든다.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도 레시피를 참고한다고 했다. 다만 내 검색어는 '초간단'이라는 사실이 조금(?) 다르다. 둘. 마트에서 '먹을 것'이 아니라 식'재료'다. 마트 안에서 머무는 공간 자체가 달라졌다. 내가 신선 코너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셋. 자투리 채소를 모은다. 한 때 자주 보던 살림 브이로그들을 보면 자투리 채소를 정갈하게 모아두던데, 그만큼 정갈하지는 않아도 나도 그걸 하고 있다. 자투리 채소는 요리를 하다보면 자연히 생겨나는 거였구나. 넷. 식재료를 관리하게 된다. 예전엔 얼마 안 되는 식재료도 그냥 냉장고에 던져넣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기록은 예전부터 했었다. 다만 그 땐 기록한 것조차도 잊었던 거지. 이제는 나의 작은 냉장고 안 신선칸에 든 재료들은 꿰고 있다. 다섯. 다음 날 요리할 것계획하고 시뮬레이션 다. 그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사야할 것들이 떠오른다. 집에 굴러다니던 아이들용 작은 화이트보드를 가져다 주방에 두었다. 거기에 다음 날 메뉴를 미리 적은 후 핸드폰 거치대 위에 세워두고 자는 게 요즘 나의 일상이다. 일어나면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서 주방으로 간다. 화이트보드에 적어둔 메뉴를 보고, 어제 본 영상의 레시피를 상기해 거기에 맞는 재료를 꺼낸다. 그 일련의 과정을 해내는 내가 멋다. 참! 여섯. 전 날 쌀 미리 씻어 안쳐두기. 그동안엔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자주 잊고 자서 아침에 부랴부랴 누룽지 끓이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제 드디어 일상이 되어간다. 아 기특해라.


요리에 서툰 나로서는 별 것 아닌 반찬 한 가지를 해내기 위해서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7시 30분에는 식사 준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완성 시점부터 거꾸로 계산해 거슬러 올라가니 기상 시간이 빨라졌다. 새벽 같이 일어나 씻고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6시 30분쯤 되면 아침 준비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사실 대부분의 과정은 아이가 자는 시간에 이뤄진다. 다만 아이가 느끼는 다름을 추측해보자면 매일 아침 밥상에 올라오는 서툰 메뉴들일 거다. 반찬 가게 반찬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 다소 채도가 떨어지는 비주얼. 집밥이라고 각종 채소들은 넣은 데다가 맛도 썩 좋지는 않아서 사실 대부분의 메뉴는 아이들에게 외면 당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만든 거니 한 입만 먹자, 두 입만 먹자 하면 마음 약해진 아이들이 이렇게 애쓴 엄마가 안쓰러워 겨우 한 입씩 먹어다.


내가 생각 외로 요리에 재능이 있어서 하는 것마다 맛있 아이들이 연신 따봉을 보내며 먹어주는 밥상도 좋았겠지마는 나는 나의 실패를, 애쓴다고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음을, 잘 안 돼도 다음 날 또 무언가 만들어 내가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리라고 생각한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비록 고작 며칠이었지만 삶이 되니 보인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남는다는 것을. 매일같이 그저 하기만 하는(잘하는 게 아니라) 이 일상도 나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잘하는 일만이 나에게 성취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에게도 남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떤 일 앞에 망설여질 때, 실패를 경험할 때, 나의 삶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요리에 재능 없고 그래서 하지 않았던 엄마가 요리 초보로서 고군분투했던 이 시기의 나를.


내 삶에, 아이의 삶에 남을 흔적을 기대하며 나는 방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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