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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 Oct 03. 2024

본의 아닌 도움 제공

토꼬가 토끼가 되기까지

첫째 아이는 말이 빨랐다. 몸은 작은데 말을 제법 하니 사람들은 쪼그만 어린애가 말한다고 신기해했다.


첫째는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유독 토끼만은 '토꼬'라고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어줄 때도 토끼라고 또박또박 읽어주었고, 실제 토끼를 볼 때도 토끼라고 말해주었다. 내 발음이 부정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는 토꼬라고 말했다. 고민이 되었다. 이건 토꼬가 아니라 토끼야, 라고 말해주려다가 언젠간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말았다.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아이는 토꼬라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토꼬는 마침내 토끼가 되었다. 글로 쓰니 몇 줄로 끝나지만, 그 시기엔 자주 고민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평생 토꼬라고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끝내 억지로 수정해주진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며 자신만의 특성과 성향이 드러난다. 자라면서 알게 된 첫째 아이는 대체로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접근이 조심스러운 아이였다. 그 당시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성향을 알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조심스럽고 시작이 어려운 아이가 말을 배우는 시기에 엄마가 하나하나 틀린 것을 고쳐주었다면, 아이는 아마 불확실한 언어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본의 아니게 도움을 제공한 셈이다. 


사실, 평생 토꼬라고 하면 어떡하지, 진지하게 걱정했던 순간도 있다. 지금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모든 엄마들의 현재진행형 걱정은 비슷할 것 같다. 그 누구도 미래는 경험할 수 없으니.


다만 나는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라면, 그리고 부모가 관심을 놓지 않는다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려주지 않아서 이 아이가 학교에 갈 시기까지 토꼬라고 한다면? 가정해본다. 아이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니 긴급한 개입이 필요하진 않은 문제인 것 같다. 엄마인 내가 조금 부끄러울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신경쓰일까? 그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남들 눈치를 보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단지 그게 이유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가 아니라 내 문제겠다. 그럼 아이는? 아이도 부끄러울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다. 부끄러우면 스스로 고치겠지. 불편할까? 그렇대도 아마 고치겠지. 친구들은 뭐라 말하나 주의깊게 보면서. 만일 학교 입학하기 일주일 전쯤 되었는데 학교갈 때는 토끼라는 말을 꼭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면, 며칠 앞두고라도 어느 날 불러서 알려줘야지. 이 동물의 이름은 토끼라고. 그럼 그 때는 알아듣겠지. 일곱살은 두 글자 단어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첫째 아이가 '왕'이라는 글자를 어떻게 쓰냐고 묻는다. 책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다. 화이트보드에 써서 보여주니 따라쓰는데, 순서가 영 엉망이다.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글자 쓰는 순서를 알려줘야 하는가, 글자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얼마간 지켜봐줘야 하는가. 다만, 글자 쓰는 일은 시간을 두고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을 수 있는 것이라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지켜보며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아이에 대한 좋은 결론은, 자주, 관찰에서 나오더라. 


2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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