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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Dec 07. 2022

2023 나에게 보내는 편지

적당한 사람이 되자


 곧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된다. 더 이상 서른이란 프레임에 우울해하지 않지만 혹여나 힘든 마음이 들 때면 ‘난 어른이니까. 무려 서른 하고도 하나잖아.’ 라며 슬픔을 재빨리 외면하는 몹쓸 습관이 생겼다. 작년 이맘때 2022년 내게 쓴 편지에 힘 좀 빼고 살자고 써보았지만 결국 더 힘주고 산 한 해를 보냈다.


 이별도 했고 재회도 했고  이별도 했다. 이직도 했고 미미하지만 월급이 올라 적금도 하나  들었다. 아픔을 이겨내는 시간과 새로운 페이지를 기대하는 설렘이   섞여 오묘한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이룬 것과 잃은 것의 범벅인  해가 지나간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단단한 관계들로 인연이 정리되어 보다 심플해지지만 마음은 묘하게 조금씩 더 외로워진다. 혹여나 내 고민이 돌덩이처럼 그들의 한켠에 남을까 싶어 차올랐던 이야기를 삼켜낸다. 엄마는 내게 늘 말한다. ‘남을 챙기려는 마음이 외로움으로 바뀌지 않도록 적당히 널 생각하며 살아’라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답한다. ‘나 굉장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야’.


 라고 말하던 나는 '계산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친절과 배려가 과해 때론 나 자신에게도 질릴 때가 적지 않다. 한 날은 친한 후배의 업무 요청이 들어왔고 내 일인 듯 최선을 다해 함께 해결해 주곤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다. 후배는 메신저로 고맙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로그아웃이 되었다. 나는 뭘 원했기에 씁쓸한 것일까? 분명 특별히 바란 것은 없다. 단지 이유 모를 헛헛함이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게 했다. 그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이다. 매 순간 열정적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길 바랬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고 돌아오는 심플한 인사에 더 인자하게 답해주는 넉넉한 선배이고 싶었다. 또 고개를 푸욱 숙여본다.


 또 어제는 가끔 밥을 같이 먹는 회사 동료에게 드디어 반년만에 헤어짐을 고백했다. 미주알고주알 물어볼 것 같았는데 그녀는 꽤나 담백하게 말해주었다.


 ‘대리님이 선택한 이별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응원해요’


 웃겼다. 이런 대답을 들을 줄 알았다면 진작 말할걸 뭘 그리 망설였을까. 뭐가 그리도 두려웠을까. 고민 없던 호의는 불필요한 고민을 얹었고 고민 많던 대화는 의외의 고마움을 만들었다. 거절을 어려워하는 것도, 마음을 다 쓰고 못내 씁쓸해하는 요상한 심보도, 고민을 줄이고 조금 더 대담해지고 싶은 내 마음 모두 엉켜 붙어 더 단단한 나로 만들어주길 바라본다.


 다가오는 한 해에는 남이 아닌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싶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말이다. 사실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작년 이 맘 때도, 올해도 나는 조금 슬프고 적적하다. 의도치 않게 삼십 대가 된 후의 겨울은 늘 외롭고 쓸쓸했다. 부디 내년에 이 글을 쓸 때쯤 나는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노라 써 내려가고 싶다.


 마음을 도려내고 일상을 살아가고 더 나은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힘껏 웃어보는 12월. 올해 정말 수고 많았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고 싶다. 적당히 친절하게 적당히 사랑스럽고 그렇게 적당히 마음을 나눌 줄 아는 현명한 나로 살아가 보자.


 안녕. 서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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