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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한테서 떨어져!"...나쁜 기억 없애기

오만가지 사람마음 9

성폭력 피해자 일까

한 여학생이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녀는 내가 수업 중에 성폭력 피해자 사례를 말할 때 주변 학생이 웃고 떠드는 게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질문을 받게 되면 직감적으로 이 학생도 성폭력 피해자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 봤다. "너도 누군가에게 성폭력을 당했느냐?" 학생은 그런 일은 없는데 아주 어릴 때 그런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기억이란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은 없애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눈을 감게 한 다음 그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 너는 어디지?", "나이는 몇 살이지?" 난 천천히 질문을 이어나갔다. 적극적 상상은 최면과 다르다.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기억을 선명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학생은 기억해냈다. 나이는 4-5세로, 장소는 슈퍼 안쪽 창고였다. 남자가 들어오고 바지를 내리는 장면까지 생각했다. 난 여학생에게 하나님이 돼서 이 장면을 보라고 했다. 말을 머뭇거렸다. 하나님으로 몰입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아보였다. 난 다시 엄마가 돼서 바라보게 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 딸에서 떨어져”라고 소리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며칠 후 복도를 지나가던 내게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상담을 길게 하지도 않고 한 두번의 만남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고통스런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가상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한 것뿐인데 그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방실방실한 모습이었다. “교수님 저 다음 학기에 유학가요”하면서.

조두순 사건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 코코몽 인형 탈을 쓴 아빠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어린 딸의 주변을 돌며 딸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심리치료의 5단계

이처럼 몇 달이 걸려야 하는 치료가 아주 짧은 시간으로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치료란 먼저 ‘기억하기(re-membering)’다. 기억 저편에 물에 젖은 빨래처럼 후줄근하게 놓여 있는 장면을 꺼내는 작업이다. 두 번째는 ‘새롭게 만들다(re-forming)’이다. 기억 속에 고정된 인물과 배경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새로운 이미지작업(re-imaging)’, 기억하면 어둡고 습한 이미지를 밝고 신선한 장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이다. 네 번째는 '수정하기 작업(revising)'으로 자신의 기억을 수정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새롭게 말하는 단계(re-telling)’가 온다. 슬픔의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말해야 했던 기억이 새롭게 감정의 동요 없이 서술하게 된다.

필자도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폭력적이고, 한편으로는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혼란스런 감정이 들었다. 힘든 내 상태에서 심리치료 과정을 통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 결과 아버지가 상처 준 시간이 기억은 나지만 감정적 동요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절실하게 애도할 수 있었다. 장례식 당일에는 덤덤했던 감정이 운전을 하고 어딘가 가던 중 설움이 복받쳐 산에 뛰어올라가 나무를 잡고 울었던 경험도 있다. 이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좋은 것만 남고 나쁜 기억은 생각도 잘 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은 '상처의 연속'...어떻게 극복할까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변경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상담심리치료다. 상처는 누구나 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따라 더 견고해질 기회가 된다. 뼈가 부러지면 잘 붙게 해야 한다. 그러나 잘 붙지 않으면 항상 부러진 곳이 또 부러지게 된다. 그런데 뼈가 잘 치료돼서 잘 아물면 부러진 부위에 뼈가 도톰하게 솟아 굳게 된다. 절대 부러지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상처를 잘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 그 상처는 다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난다. 반면 상처가 잘 아물면 그 상처는 내 삶의 거름이 되고 동력이 될 수 있다.

한 때 유행하던 '상처입은 치유자'란 말이 있다. 상처를 겪어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잘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다. 종교적 의미에서 성직자는 상처입은 자들이고 그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이다. 상담심리치료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수업시간에 지속적으로 쓰게 하는 과제가 ‘가족사와 상처’라는 주제로 글이다. 글들을 보면 수많은 사연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상처가 있어서 상담심리치료 학과에 들어왔구나 하는 추론을 해본다. 그러나 졸업할 때 쯤 이들이 그 상처를 과연 극복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된다. 이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만나면 내담자를 상처입게 할 수도 있다.

'인생은 상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당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성장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두려워서 피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게 한 사람의 역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역사학자인 토인비가 역사서를 기록하며 "도전을 받지 않은 민족은 스스로 멸망한다"이라며 "한 민족의 흥망성쇠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은 저마다 겪는 경험과 느낌이다. 그 경험과 느낌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느냐가 저마다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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