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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만신창이 됐는데, 아버지는 천국 가겠다고요?"

오만가지 사람마음 17

영화 <올드보이>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근친상간을 다루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후 언론에서 차츰 드러내는 근친 문제에 대한 모습은 다양하다. 그러나 실제를 통해 접하다보면 많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단순히 화면속에서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람의 숨결이 없는 TV 화면과 실제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 시각 혹은 학문적 시각은 현실 속 실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가족 간에 다양한 방식의 성 문제가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의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필자의 치료방식이 경험적이고 행위적인 면이 많은 탓에 청소년 쉼터와 여성쉼터 그리고 탈북민 쉼터들과 같은 특수 집단에서 필자를 찾곤 한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집단일수록 강의나 언어적 상담의 효과가 적은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그 가운데 여성쉼터는 가정 폭력을 피해 도망친 여성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돌봄과 치료에 중점을 두면서 가끔 외부 강사를 불러 프로그램을 하곤 했다.

필자가 하는 드라마를 통한 치료가 활동적이고 경험적인 면이 강해서인지, 강의보다는 참가자들의 참여가 좋다고 판단해서인지 담당자는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시설에 있는 여성분들은 누가 오던 경계심을 갖고 바라본다. 인생 자체를 힘들게 살아왔고 폭력적 상황에서 도망쳐 나와서인지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했다.

치료프로그램을 하고 돌아서는데 한 여성이 나를 붙잡았다. "저 따로 연구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시설에 있는 동료들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고, 너무 수치스러워 여기서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의 폭력이 있어 이 시설로 도망쳐 나온 상황이었고, 이 정도는 시설 관계자도 아는 정보였다. 그 이면의 스토리는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용히 내게 말하려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픽= 연합뉴스

어린 시절, 엄마가 없을때 아빠는...

얼마 후 그녀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녀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결혼을 하고 애까지 낳았지만 남편이 부부관계를 위해 다가오면 자신은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삶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자신의 불안은 커져갔고 부부관계는 악몽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때론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거리를 배회하거나 불안에 떨며 남편이 오는 것이 두려워서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역할극을 시도해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점점 파고들어가다 보니 어린 시절이 나왔다. 엄마가 없고 아버지와 자매가 살았던 집에서 힘들게 일한 아버지는 자기 방에 가끔씩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그런 관계 속에서 아무 저항없이 살았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아버지와 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도 자신처럼 밤에는 성관계를 하면서 살고 있는 관계일 거라고 오랫동안 믿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찌어찌 서울로 왔고, 결혼도 하며 살고 있는 그녀에게 어느 날 고향에서 어느 교회 전도사가 연락을 해왔다. 아버지를 통해 딸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고 신앙을 권했다. 고향에서 나이든 아버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소식도 전해왔다. 그녀는 아버지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자기는 죽어서 천국 가겠다고 교회까지 다니느냐며 치료 중에 발악하듯 외쳤다. 숨을 헐떡이며 분노를 표현하던 그녀는 눈이 풀리고 탈진상태까지 갔다.

상담과 역할극을 동반한 치료를 마치자 그녀의 얼굴에 평온이 찾아왔다. 주근깨와 검버섯이 연해지는 듯 보였다. 평생을 간직한 비밀을 풀어내고 나니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김이 올라왔다. 이 치료과정이 그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자기의 억눌리고 어두웠던 시간을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 수는 있다.

수년 후 그녀와 우연하게 만났다. 그녀는 혹시나 과거의 어린 시절, 여동생도 아버지에게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동생에게도 확인을 했었다고 했다. 짐작대로 여동생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정은 깨졌지만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새롭운 삶을 준비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뒤돌아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버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닐 것이다. 딸도 이제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각자 위로 받으면 되는 것일까?

피해자는 여전히 힘든데, 제대로 돕고 있을까

<올드보이>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괴로워하며 최민식이 혀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글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든, 잊기 위해 노력하든 자기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 살 뿐이다.

아버지의 애를 낳았을 수도, 자신의 삶이 망가졌을 수도 있지만 사회는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다. 신문기사를 보고 혀를 끌끌 찰 뿐이다. 오빠가 여동생에게 성행위를 했을 때 부모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들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성 문제가 당시에는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여성에게는 다양한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이를 단순히 여성문제로 이슈화시키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떠들썩하게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개인과 단체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도울 뿐이지, 당사자의 삶의 긴 연장선에서 긴 호흡으로 함께 해주지는 않는다. 암묵적으로 "이 정도 도움이면 너도 만족해야지", "이 정도 해주면 감사해야지"를 강요한다. 지금은 수 많은 지원 시설이 존재한다. 그 시설과 돌봄이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녀의 삶이 진정 위로 받고 도움을 받는지는 쉽게 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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