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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는 취재수첩이 될 수 없었다

일과 기록에 에버노트 효과적...기사작성/취재 시 활용도 가장 낮아

by 사만다

에버노트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에버노트로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다 보면 좋은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물론 에버노트는 잘못이 없다. 기자의 '정신없이 바쁜' 라이프 사이클이 잘못했다.


수습기자로 옮기기 전에는 에버노트로 모든 것을 관리했다. 취재아이템 발굴 및 기자 작성 등 업무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버킷리스트 및 블로그 등 개인 영역에서도 에버노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당연히 에버노트를 활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습기자 생활도 잘해낼 것이라 굳건히 믿었다. 그러나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에버노트가 기자의 취재수첩을 100%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 5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메모장 기능 : 에버노트→메모장→CMS


에버노트에는 '서식 간단히'와 '플레인 텍스트로 변환'하는 옵션이 있다. 후자의 경우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사를 작성하다가 중요한 부분에는 '굵은 글씨'나 '밑줄'을 쳐서 강조 표시를 하는데, '플레인 텍스트로 변환'은 모든 스타일 서식을 초기화한다. 그래서 '서식 간단히'를 애용한다. 결국에는 '에버노트 서식'을 없애기 위해 메모장에 텍스트를 붙여넣는 중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기자에게 있어서 '벗'과 같은 메모 프로그램 2종

우선, 에버노트에 기사를 작성한다. 메모장에 텍스트를 붙여넣고 서식을 제거한다. 그런 다음 콘텐츠관리시스템(CMS)에 기사를 써 붙인다. 에버노트에서 CMS에서 바로 콘텐츠를 복+붙하면 단락 띄어쓰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따옴표 표기부호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는다.


이런 서식 문제 때문에 현직 기자들은 여전히 윈도우 '메모장'이나 '칼라 메모 위젯'을 선호한다. 한글이나 워드 프로세서를 여러 개 띄워두면 컴퓨터가 느려진다.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이 선호되는 이유다.


2. 현장취재 때는 손 필기가 답


지난 11월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고 르포 기사를 작성하는 연습을 했다. 당시 날씨는 영하 2.6도였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7도. 30분만 서 있어도 손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였다. 에버노트에 타이핑해 텍스트를 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버노트 녹음 기능을 켰다. 화면이 꺼지니 녹음이 중단됐다. 녹음 앱을 따로 쓰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녹음을 끝내는 순간 파일을 다시 열어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켜진 화면을 유지한 상태에서 녹음을 성공적으로 끝내도 문제였다. 회사에 복귀하고 1시간 내로 기사를 작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녹취본을 다시 듣고 텍스트로 받아 적을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 뒤부터 녹음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중요한 내용(숫자, 지명, 이름)만 뽑아 손필기로 기록한다. 이때부터 종이수첩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종이메모를 생활화한 지 두달 째다. 수습기자 기간과 일치한다.


3. 선배 지시 기록할 때도 '손필기'


메신저로 사수 선배의 지시가 떨어진다. 가끔 여러 선배로부터 지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통합 채널을 구축한 상황이 아니라서 지시 내용을 메신저별로 찾아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따로 기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에버노트 앱을 열고 지시사항을 기록할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급하게 인박스(inbox) 노트북에 지시내용을 꾸겨 넣어도 봤다. 맥 기본 메모 앱에도 기록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창에다가 바로바로 적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 분산해서 메모를 하다 보니 하나둘씩 빼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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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지시사항 한두 개씩 빼먹지?"라고 주의를 준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즉시 모든 메신저/전화/카톡/구두를 통한 전달사항은 메모지에 손으로 적기 시작했다. 체크리스트 형태로 기록했다. 임무를 완료하면 체크박스 표시하고, 체크박스 목록이 모두 채워지면 해당 메모지를 버렸다. 맨 위 할일부터 차례대로 완료하기만 하면 됐다. 인스턴트 업무 처리 시에는 종이 메모가 더 효율적이었다.


4. 연락처 관리는 '언감생심'


기자는 일보를 작성한다. 내일 쓸 기사가 무엇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어디로 출근할 것인지, 어떤 정보를 새로 들었는지 등을 담아서 윗선에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 즉 이름이 입력된 노트가 수십 개도 생긴다. 예를 들어, 7/18, 9,28 12/13 12/31 '이수경'이라는 홍보 담당자를 만나면 연락처 노트까지 포함해 총 5개의 노트가 생기는 셈이다. 자신이 원하는 노트를 손쉽게 찾기 위해 제목이나 태그에 '연락처'를 입력한다. 문제는 검색 입력창에 '연락처 이수경'을 입력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것이다. 경제지에서는 특히 시간이 '생명'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에버노트를 이용한 연락처 관리는 포기했다. 새로 받은 명함은 '리멤버'에 등록한다.


5. 제2의 두뇌 시동조차 못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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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리빈이 에버노트 CEO를 역임할 당시 "에버노트는 개인의 지식을 언제 어디서나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제2의 두뇌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 문구는 에버노트에 스크랩해놓은 자료(지난 2013년 6월 24일 에버노트코리아가 자사 블로그에 발행한 글)에서 발췌했다. 맞다. 에버노트는 이렇게 묵혀놓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연결성을 제공해준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기억하는 비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단, 기자로서 기사를 쓸 때는 예외다.


검색해서 원하는 노트를 찾아보고 읽을 시간이 없다. 핑계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줄은 나도 몰랐다. 그만큼 담당 영역이 넓기도 하거니와 산업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생명이다. 머릿속에 저장한 내용을 바로 타이핑해 기사화하는 것도 기자의 능력이다. 그러니 제2의 두뇌인 에버노트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낮출 수밖에 없다. 이 바닥에서 "에버노트 검색해보고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능력'을 인증하는 셈이다.(ㅠ.ㅠ)





미래를 살지만 오늘을 기록하는 기자


기자는 미래에 살고 있어야 한다. 써야 할 기사 아이템은 40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쟁여놔야 한다. 무슨 일이 생겨도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게 기자의 의무다. 그래서 앞날을 '미리' 내다봐야 한다. 이질적인 것은 기자는 '현재'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상부에는 오늘 보고 듣고 한 일을 '보고'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기능을 빼고나면,


에버노트

- 메모장 기능

- 손 필기

- 즉시 처리해야 하는 업무(지시)

- 연락처

- 제2의 두뇌

- 미래 계획

=데일리 노트


에버노트는 데일리 노트를 작성할 때 매우 안성맞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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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최근 에버노트가 공개한 2016년 버전 에버노트 달력 중에 일간 플래너를 애용한다. 업무를 다 완료하고 나서 오늘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에버노트만큼 효과적인 도구도 없다.


결론은, 07:00-18:30 기자로서의 공식 업무 시간 동안 내게 에버노트는 반쪽짜리 취재수첩이라는 것. 정말 슬프고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기록의 용도 외에 지난 DB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려면 아무래도 봄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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