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14
직장인이었을 땐 늘 같은 곳에서 일했다. 늘 엇비슷한 시간에 한곳으로 출근을 했다. 계절만 달라졌을 뿐 늘 똑같은 풍경을 보고 늘 똑같은 거리를 걸었다. 늘 똑같은 것만 접하다보면 직장생활에 쉽게 염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늘 색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팀을 꾸려가면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늘 정해진 시간에 회의를 했고, 늘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과업을 해야만 했다.
늘 똑같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해야 했고, 그나마도 내 일만 하느라 말한마디 주고받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지만 자신이 주어진 일을 해내느라 안부를 건네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파티션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구역이 나뉘어 있는 듯했다.
일탈을 꿈꾸고 싶었지만, 그나마도 점심 먹고 30분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6시 칼같이 퇴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한, 두 역 거리를 걷고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회사, 집, 회사. 그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 다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 다른 부서에서 요청하는 일. 그 안에 '나’는 없었다. 회사만을 위한, 회사를 위한 일.
글을 쓰는 일을 했지만, 미국 본사에서 나오는 기사를 '번역’할 뿐 내 생각을 담을 수는 없었다. 타인의 생각을 옮겨 적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모든 회사 생활이 다 그런 거라는 걸, 그렇게 부속품이 되어간다는 걸 그때 느꼈다.
'나’를 찾고 싶어서, 그래서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현업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트렌드를 읽고 싶어졌다. 텍스트만 보면서 '지금’을 가늠하기 보다는 '현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자아 찾는 일’은 좀 나아졌습니까?
매일 출근하는 곳이 다르다. 강남을 갈 때도 있고, 강북을 갈 때도 있다. 늘 다른 풍경을 보며 출근을 한다. 청계천을 걷다가도 어느날은 오후 여의도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판교에서 해질녁 풍경을 구경할 때도 있다. 추운 날씨 옷을 싸매가며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기도 하고, 약속 시각에 늦어 발걸음을 재촉해보기도 한다.
늘 다른 일상의 연속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다르다. 개발자를 만날 때도 있고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서 취재할 때도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를 만나서 게임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상대방의 식견을 배우기도 하고 카카오 이야기를 하면서 친분을 다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좋은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고,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시달리면서 사는 것도 '일'이다.
늘 다른 일상에 대한 댓가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나그네’의 운명을 살아야 한다는 것.
필요한 모든 것은 백팩에 담고 수도권 전역을 돌아다닌다. 컴퓨터와 마우스, 충전기는 기본. 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방방곳곳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달팽이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족쇄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비상하고 싶은 인간의 발목을 어김없이 채워 버린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지만, 기자로서 감내해야 하는 삶은 더더욱 그러하다. 사건 앞에서는 자신의 삶도, 가족도 모두 뒤로한 채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감내하기엔 그에 대한 보상은 턱없이 적다. 가변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적이지 않은 삶.
미래 개발을 위한 시간은 없는 삶. 자아를 찾는 고민의 시간조차 없는 나날의 연속들.
현재 지금 삶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그 다음 날 새벽 1시, 2시에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모든 신경은 기사에 쏠려있다.
내 미래,
내 건강,
내 가족,
내 사랑,
그리고 내 이팔청춘이 끼어들 여유조차 없는 '늘' 바쁜 기자의 시간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