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15
수식어(기업, 소속)가 없는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100세 인생을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몇 달 전 알파고가 한창 열풍이었을 때의 일이다. 부장에서 연합뉴스(이하 연합)에서 나온 한 기사의 팩트를 확인한 뒤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하셨다. 독자적인 기사를 쓰길 원하는 부장의 성향을 잘 알기에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확인에 나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알파고는 사기극이다’라는 발언을 한 사람 때문이었다. IT전문 변호사라고 보기엔 발언이 너무나 거칠었고 (그리고 편파적이었다), 문제를 삼은 부분과 그에 대한 논리가 빈약해 보였다. 따라 쓰면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부장께 보고하니 부장은 "그 사람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고, 그걸 전달하는 것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지시했다. 따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합에서 쓴 기사가 발단이었다. 맞다. 기사에는 여러 형태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을 떠나, 현상 자체를 보도 하는 것 또한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그 일을 실행하는 기준이 '연합’이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기사를 써야 하는 기준이 연합에서 썼느냐가 기준이 된 것이 문제였다.
제목은 '연합의, 연합을 위한, 연합에 의한’이라고 달았지만 사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사업자도 이 문제에 동참하고 있다. 기사를 쓸지 말지, 따라쓸 지 말지를 결정하는 결정권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 탑에 올랐느냐, 그것이 오늘날 기사 벨류(가치)를 매긴다. 네이버 메인에 올리는 과정에서 사람의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어떻게 하다 보니 공정성으로 포장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정보를 소비한다. 제3자에 의해 짜여진 각본 속에서 정보를 소비한다. 우리는 정보를 주체적으로 소비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주체적으로 정보를 갉아먹는다.
연합을 따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통신사라서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연합에서 나온 기사를 토대로 추가취재를 하고 새로운 팩트를 발굴해서 쓰는 기사가 많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단순히 '연합에서 썼으니까' 쓰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환경적인 제반이 닦여있지 않은 탓이 크다.
이는 온전히 기자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대변하고 싶다. 이미 독자들은 '홈페이지’라는 관문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데, 데스크들은 모든 정보를 자신의 사이트로 독점하고 싶어 한다. 단순히 페이지뷰(광고 단가 높이기 위해)의 문제 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세상 모든 정보를 담아내야만 언론사로서 제 역할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직을 돌린다. 주말까지 기자들은 일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한 주동안 바쁘게 돌리는 육체와 정신을 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휴일에도 일한다. 어떤 매체는 주말까지 발제하라고 강요한다. 선배 기자들의 삶에는 '쉼'이 없다. 피로만 쌓인다. 관계 단절은 기본이다. 피로는 열정을 갉아먹는다. 회사의 일원이라는 이름 하에.
취재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은 한계가 있다. 자기 발제 챙기고 보도자료 챙기다 보면 정작 취재하는 데 투입할 시간은 지나치게 적다. 하루 1발제다. 이런 게 일상이다. 그런데 기사는 써야 한다. 24시간 기사를 쓰기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이기적인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답은 따라쓰기다.
독촉한다. 창의적인 기사를 써! 그러면서 출입처도 관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업계에 터지는 이슈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술도 먹어야 한다. 취재원도 만나야 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연합을 따라 쓰게 된다. 기사의 질이 아니라, 기사의 양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의 탓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서인지 그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 없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면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다. 어디 소속의 기자? 회사를 떠나면 끝이다.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회사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고용해 내 자리를 메꿔나간다. 그냥 이 사회의 순리다.
그래서 고민이다. 나는 회사의 일원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있고 나는 거기에 맞춰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미래는 너무나 불안하다. 완전고용도 보장해주는 곳은 그 어디 하나 없다. 어디 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사업이나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실무 경험도 없으면서 말이다.
스스로 질문하기로 했다. 전통적인 기자관이란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지. 그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나의 자존심인지, 회사가 내게 투영하는 회사원으로 사는 삶인지.
그리고 내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목소리와 주관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회사나 사회는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보는 사회, 내가 보는 경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흐름. 그것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회사의 논조가 내가 될 수는 없고 나의 논리가 회사의 방향과 알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내 길을 찾아야 한다. 나의 색깔, 나의 프레임. 나만의 프레임.
100세 시대다. 아직 28년을 살았다. 72년을 알차고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내 길을 걸어야 한다. 전통적인 기자관에 얽매이기엔 인생은 너무 길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나를 수식하는 조직 없이도 당당한 삶을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연합의, 연합을 위한, 연합에 의한 언론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