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13 - 어깨를 짓누르는 벅찬 일상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은 대략 13시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나 지하철에 자리 잡고 앉을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기사나 자료를 찾아보고, 기사를 쓰고, 자료 요청하고, 또 기사를 수정하고. 이게 어떤 (수습)기자의 일상이다.
우리 회사의 정시 출근 시간은 8시. 수습은 7시까지 와야 한다. 그런데 늦게 잘 수는 있어도 일찍 일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보통 강남이나 판교를 가는데 대략 1시간반정도 소요된다. 늦어도 집에서 5시 30분에는 나와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고양이 세수를 겨우 하고 화장도 겨우겨우겨우한다. 너무 귀찮은 날이면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고 출근하는 날도 있다. 옷은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골라 입는다. 패션따위 신경 안 쓴 지 오래다. 패션에 신경 쓸 일 있으면 10분이라도 더 자거나 기사를 쓰는 게 더 낫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좋은 건 교통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것. (정녕 좋은 것인가!) 버스나 지하철도 보다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6시 갓 넘은 시간에도 새벽같이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삶이 참이나 퍽퍽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낀다.
출근 시간은 점점 빨라지지만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지는 게 대한민국의 일상.
주간당직을 서면 여의도를 가고, 그게 아니면 을지로나 강남을 주로 간다. 대개 내가 출입하는 회사들이 강남, 판교 쪽에 몰려있어서 요즘에는 주로 서울 남부 쪽을 자주 가는 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폰을 켜고 밤사이 새로운 기사가 없나 찾아본다. 최근 동향도 알 수 있고 어떤 기사를 써야 할 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전에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남들 기사 어떻게 쓰는지 봐야 나아진다는 것엔 동의한다. 물론 모든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제목과 리드만 보는 수준이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점심 약속 전까지 보도자료 처리하고 발제를 쓰느라 오전엔 정말 정신이 없다. 사실 발제를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보도자료도 요즘에는 빨리빨리 쳐내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보도자료가 수십, 수백 개가 들어오는데 다 보고 쓰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그냥 마음 꼴리는 것만 골라서 쓴다.
점심시간. 음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먹는다. 끊임없이 상대방과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 건 정말 불편하다. 왜 이렇게 불편한 짓을 해야하는지 간혹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꿋꿋이 해낸다. 장점은 서울 방방곡곡 맛집을 다닐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매일 이렇게 먹다 보면 뒤룩뒤룩 살만 찔 것 같다. 자제해야 하는데, 매일 진수성찬이라 젓가락질이 습관이 됐다.
오후, 또 오전 사이 출고된 기사들을 쭉 읽어본다. 한 몇 개월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기사가 중요하고 아닌지 눈대중으로 골라볼 수 있게 된다. 트렌드 기사보다는 새로운 팩트를 제시하는 기사들만 주로 찾아보려고 하는 편이다. 기사가 새로운 소식을 전달해야 하는데, 간혹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오후에는 자료와 전화취재 등을 하면서 내일 쓸 기사를 미리 준비한다. 아니면 보도자료를 치기도 하고 아니면 오후에 행사가 있으면 행사 커버를 하기도 한다. 차라리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날도 있다. 행사 발제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귀찮고 힘들 땐 행사 한 두개씩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인다.
가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페친이나 카톡 정보원(?)들을 대상으로 취재하기도 하고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얼마 전 쓴 알파고 학습비용 추정치도 마치 연구원님이 페친이라 기사화가 가능했다. 어쩔 때 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편이 일할 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로서 해야 하는 발제는 오전에 다 끝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오후에 인터뷰 일정을 자주 잡아놓기도 한다. 사실 백날 텍스트만 들여다보는 것보다 사람 한 번 더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정식 인터뷰일 때는 사전 인터뷰지를 작성하기 위해 따로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정말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좋은 직업이다. 맛난 것 먹지, 좋은 사람들 만나지,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다.
공식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 그 전에 내일 쓸 기사와 취재 중인 아이템, 그리고 오늘 들은 정보와 내일 주요 일정에 관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한다. 아이템이 없을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이슈를 그냥 팔로업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뉴스를 써야 하는데 취재가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내일 기사를 쓰겠다고 제안할 수도 없다. 가장 괴로운 시간 중 하나다.
6시 반에 퇴근하면 그 뒤는 자유의 시간일까? 천만의 콩떡, 만만의 콩떡이다. 아직 수습 기간이라 저녁 술자리는 없는 편이지만, 아마 '수습’을 떼는 것과 동시에 술자리가 연일 잡힐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술자리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킨십’을 통해 홍보 또는 정보원과 인간적으로 친해져 놓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맨날 취재하려고 전화하고 만나는 것만큼 퍽퍽한 삶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업무적인 잣대만 내세울 필요가 있나. 인간적으로 우선 좀 친해지자, 그러기 위해 저녁 시간까지 할애해서 만나는 거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까는 것보단 재미없을 확률이 높다는 건 함정.
필자의 경우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요가수업에 참석하고 있다. 살 빠지는 효과를 보려면 먹는 양을 줄여야 하겠고, 가장 큰 목적은 '치유’를 하기 위해서다.
컴퓨터를 종일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거북목’을 하고 앉아 있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도 부리지 못하고 온종일 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퍽퍽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로지,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바로 요가 하는 시간이다. 요가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실천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요가는 인사이트 플로우다. 음악에 맞춰서 요가 동작을 수행하는 건데, 꽤 재밌다. 중간에 1달간 못 나간 것을 제외하고 한 4개월간 요가를 꾸준히 한 덕에 근력은 좀 는 것 같은데, 지방이 늘었다. 유산소 운동이 필요한데, 주말에는 늦잠자기 일쑤라 운동은 언감생심이다.
건강도, 가족도, 지식탐구도, 삶의 여유도 안녕
한 달에 두세 번은 야간당직을 들어간다. 밤 10시30분까지 꼼짝없이 회사에 붙들려 매이는 시간이다. 집에 오면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 씻고 책상 앞에 앉으면 자정이 넘고, 자료를 찾고 내일자 기사를 준비하다 보면 2시를 넘기기 일쑤다.
이번 주에는 월요일 화요일 연속 야간당직이었다. 눈은 벌게지고 피로는 누적되고 피부색은 침침해졌다.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었고 물먹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였다. 보통 회사생활을 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은데, 참. 여기 업계는 너무나 다이내믹해서 주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점차 가족과도 멀어지고, 여유로운 삶과도 멀어지게 된다. 온갖 스트레스도 말도 안 하고 인상을 찌그리고 있으면 엄마는 (감히, 지x맞은 딸인 걸 알기에) 내게 말도 못건다. 가족과 저녁 식사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퇴근 후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 빌려 잔디밭에 앉아 읽었던 것들,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도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
회사를 오가며 음악을 들으며 심심함을 달래는 것은 (과거의) 일상이었다. 지금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고, 그 시간에 기사를 읽느라 온정신이 팔려있다.
수습생활을 끝으로 이 생활이 종식될까, 아니면 이건 서막에 불과할까. 이제 만 2개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