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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만다 Dec 21. 2017

연말파티 혼자서 기획해본 후기

생산성 키워드를 내세운 네트워크 파티는 언젠가 꼭 한번 열고 싶었다. 아웃스탠딩 기자로 활동했던 2017년 6월께 일이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행사에 초대돼 갔다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열기에 흠뻑 빠진 것을 계기로, 나만의 행사를 기획해보리라는 다짐까지 해버렸다. 현장에서 여인욱 토스랩 마케터와 오랜만에 만나 행사 아이디어를 건넸더니 , "좋다"는 피드백을 들어서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얼마나 열고 싶었던 건지, 페이스북에 그 의지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사이 브런치 모임과 맥주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이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니즈를 간접적으로 파악해봤다. 분명 있었다. 어디에서든지 간에 해소하지 못한 갈증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마음먹기


하지만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나만 좋다고 파티를 하겠다는 건 아닌지, 오겠다는 사람이나 있을는지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술자리도 능력이다’라는 책을 우연이 접하면서 '파티를 열지 말아야 할 이유'만 잔뜩 찾았다.


"스탠딩 파티는 비용 대비 효과가 낮습니다. 특히 파티 주최자와의 만남이 목적인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차우 업무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주최한 스탠딩파티에 참가했다고 가정해봐요. 그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당신만 있을 리 없겠죠? 파티장에 온 사람이 그 주최자를 업무적인 이유로 어떻게든 말 한번 터보려고 합니다. 30분 동안 순서를 기다려봤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겨우 1분도 채 안 될 겁니다. 곤란한 건 주최자도 마찬가지죠. 처음 보는 사람 태반인데 그거 어떻게 다 기억해. 비싼 돈을 내고 참석해도 금액에 걸맞은 대접을 기대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애초에 스탠딩 파티로 성과를 내려는 의도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냥 다음에 또 한 번 만날 계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합니다." (일부 문구는 제 스타일로 바꿨습니다)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혼자서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할 리 만무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처음 본 사람들끼리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했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스탠딩 파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1월 11일 언니들과 함께하는 (생산성) 브런치 모임에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특히 유이경(프레시코드 CMO) 언니의 격려가 제일 큰 영향을 미쳤다. 싱글이었던 우리는 언니가 아는 홍대 부근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컨셉의 파티를 열지, 규모는 어떻게 할지 등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구글 폼(Goole Form)을 이용해 파티 신청서를 만들고 내 페이스북에 뿌렸다.


https://www.facebook.com/samantha.890410/posts/1616447098413018


다른 파티처럼 멋들러진 포스터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럴 여유는 없었다. 파티 열어서 돈 벌 생각이 애초에 없어서였다. 따라서 나는 최소한의 자원을 투입해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만 했고, 그래서 과감히 포스터를 포기했다.



신청서 만들기


신청서에는 파티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를 기술했다. 포스터나 행사 프로그램은 없지만, 최소한의 정보라도 보고 사람들이 보고 신청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파티 개요(날짜와 시간, 장소, 입장료), 신청(참가)자격, 진행 프로세스, 이렇게 크게 3가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https://goo.gl/forms/TeTVuLiFgcSlXHlM2

'생산성'(을 빙자한 재미지게 노는) 연말파티

안녕하세요. 사만다입니다 :) '생산성'을 키워드로 내세운 연말파티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파티 계획> 날짜 : 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시간 : 오후 6시부터 오전 12시 입장료 : 3만원 - 음식이나 음료 주문 방식에 따라 금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3만원에서 3만5천원 사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아울러 운영자는 이번 행사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을 것이며, 입장료는 오로지 술과 핑거푸드, 행사 준비에 필요한 재료비 등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 최대한 합리적으로 음식/음료 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낸만큼 먹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해볼게요 :) 남녀비율 : 최대한 50:50로 맞출 예정입니다. 장소 : 홍대-합정-상수 어딘가 <신청자격(아래 모두 다 포함되어야 함)> - 남녀 25살 부터 36살까지 연말에 약속이 없어서 심심하거나 외로우신 분('싱글' '커플'을 붙여 놓고 최대한 싱글끼리 연결해드릴게요 걱정마세요 ㅋㅋㅋ 물론 커플이거나 기혼자도 환영합니다. 남녀 짝짓기보단 업계 네트워킹이 주 목적입니다.) - '생산성' 또는 '스타트업'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 - 기업(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에 몸담고 계시거나 대학원생 - 술 좋아하시는 분 (요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술은 못드셔도 스탠딩 파티를 즐기실 줄 아는 분이어도 웰컴!) - 그런데 아마도 이 폼을 다 작성하는 분들은 왠만하면 다 패스될 듯요 :) 인원 다 꽉차면 선착순으로 자릅니당 ㅠ <초대 프로세스> 1.프로필과 관심분야를 보고 이번 행사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는 11월 25일에 이메일로 연락드립니다. 2.입금 먼저 해주세요(노쇼 방지) - 환불 불가. 오실 분만 받겠다는 의미입니다. 간보는 사람 싫어요 :( - 카카오뱅크로 입금받을 예정입니다. 실시간으로 입금 내역이 알림으로 울리니까 따로 연락안주셔도 됩니다. 3.입금 확인 되면 이메일로 private invitation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 여기에는 행사 장소와 프로그램, 드레스 코드등 행사와 관련된 모든 업데이트 사항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4.행사 당일에 오셔서 재미있게 노시면 됩니다.

docs.google.com

 


파티 개요


지금 다시 보니 파티 콘텐츠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신청서를 열심히 채워줬다.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ㅠ.ㅠ) 일단 신청부터 받고, 인원에 따라 파티 규모를 축소 혹은 확대하려고 했다. 신청자도 없는데 70명, 100명 규모의 파티룸을 대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참가자격


일단 파티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참가 자격을 둘 수밖에 없었다. 크게 3가지를 중요시했다. 나이와 직업 유무, 생산성에 대한 관심도가 바로 그것이다.


- 한국 나이 25살부터 35살 사이의 참가자만 받았다. 29살인 호스트가 대화를 나누기에 무리 없는 연령대라고 판단했다. 비슷한 연령대끼리 좀 더 재미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나이 차가 많이 나면 일방적인 훈교로 끝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었다.


- (대)학생은 제외한 직장인만 받았다. 학생과 직장인이 중요시하는 생산성 키워드에는 큰 격차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키워드가 얼추 비슷하더라도 업무상 필요한 워크플로우와 공부를 위한 워크플로우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이 가진 생존에 관한 고민을 학생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 마지막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주관식을 얼마나 성의있게 채워 넣느냐였다. 기준 나이와 직업 유무를 충족해도 주제와는 어긋난 내용을 쓴 분은 초대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았다. 단순히 '관심 있다', '이제 해보려고 한다', '재미있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생산성을 높이는 데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만 모여야 행사 만족도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진행 프로세스


선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인 만큼 합격(?) 메일을 보내는 날짜, 선(先)입금 후(後)초대장 등에 관한 정보를 나열할 필요는 있었다.




중간 알림


행사 신청자들에겐 주기적으로 '알림’을 줄 필요가 있었다. 구글 폼 양식에 써둔 내용을 다 읽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읽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다. 아울러 실제로 이 행사가 진짜 진행될 것인지에 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지속해서 드러낼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구글 폼으로 입력받은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https://workflowy.com/s/EIjg.Db50QtJ0xW



합격(?) 메일


그렇게 나흘 만에 내가 내세우는 조건을 만족하는 참가희망자 40명을 모았다. 그다음 나흘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호스트인 나를 포함해 50명을 모았다. 이제 수금-초대장 발송-1:1 질의응답을 위해 창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1안으로 생각한 것은 페이스북 메신저였다. 애초에 페이스북 링크 첨부를 유도했기에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지 못해도 즉각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참가자들을 별도 관리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즉각적인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메일은 언감생심이다. 이메일 답장 기다리다가 날밤 깔 수도 있다. 카카오톡 채팅이 곤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스북 메신저와는 달리, 카카오톡 아이디나 개인 휴대폰 번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찾은 비책은 바로 카카오톡 오픈채팅이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는 그룹채팅 기능만 있는 줄 알았는데, 1:1채팅도 마침 있었던 것. 1:1채팅이 되는 오픈채팅을 생성, 해당 링크를 합격 메일에 첨부했다.



오픈채팅방을 만든 건 신의 한 수였다. 파티에 온다는 사람만 일괄적으로 모아 관리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나는 관리 편의를 위해 1:1 대화창에 다음처럼 넘버링했다. 해당 번호는 구글 스프레드시트 상 고유번호(primary key)와 같다. 번호로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 관리가 편했다.


참고로 전체공지는 구글 캘린더 '일정’을 통해 해결했다. 구글 캘린더 일정에는 누군가를 이메일로 초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걸 사용한 이유는 공지 내용을 수월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일정에 초대받은 사람은 일정 '메모’에 적어둔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초대 시기와는 상관없이 초대 관련한 모든 공지 내용을 모두 확인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입금안내


오픈채팅방에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1:1로 대화하면서 입금 절차를 안내했다. 내 재산과 입장료가 섞이는 걸 방지하고자 입장료 전용 계좌까지 개설했다. 물론 매번 같은 이야기를 50번이나 반복하지는 않았다. 해당 내용을 정리한 워크플로위 링크를 복사+붙여넣기만 50번 반복하면 된다. 다소 귀찮긴 하지만 파티에 올 사람과 미리 대화도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1:1 채팅방 이름을 하나하나 바꾸고, 카카오뱅크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닉네임 전달받으면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모두 만만치 않았다. 무려 50명분의 데이터를 나 혼자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힘들었다. 파티를 기획/실행하는 데 있어서 체력 소모가 가장 많이 되는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여동생한테 이런 하소연까지 했다.



나 : 미쳤나 봐. 내가 왜 파티 연다고 쇼했는지 모르겠어

여동생 : 얼마나 오는데?

나 : 50명

여동생 : 미쳤네! 그럼 혼자 다 준비하는 거야?

나 : 어. 혼자 기획하고. 근데 내가 덕을 잘 쌓았나봐. 사람들이 막 나만 믿고 돈을 보내줘. 근데 내가 진짜 이거 왜하겠다고 했는지 진짜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 굳이 왜 일 벌이고 이 난리야. 진짜 내가 다시 이런 대규모 파티 연다고 하면 꼭 말려라...

여동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소섭외


또 다른 폐인 포인트는 바로 장소섭외. 적당한 장소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나처럼 모든 옵션을 다 열어보고 검토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파티에 적합한 찾기 위해 내가 이용한 곳은 바로 스페이스 클라우드다. https://spacecloud.kr


가격만큼이나 중요한 건 바로 장소와 접근성이었다. 홍대와 강남 둘 중 하나를 고려했는데, 최종적으로는 '홍대’를 선택했다. 사실 가격 때문이었다. 50명 규모의 웬만한 강남 파티룸은 정말 비쌌다. 인당 3만원씩 내는 구조에선 대관비로 돈을 다 탕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상대적으로 홍대나 합정 쪽 장소 대관비는 저렴했다.


50명 규모의 장소 중에서 주류 반입이 가능한 곳을 모조리 리스트업해서 가격 대비 괜찮은 곳을 찾았다. 새벽 2~3시까지 눈이 벌개지도록 장소를 찾았다. 10만원~20만원 선에서 빌릴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파티 느낌을 낼 수 없어서 제외했다. 파티 느낌을 낼 만한 장소를 찾는 것도 정말 힘든 일 중 하나다.




케이터링


1안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홈플러스 방문’이었다. 세계 맥주나 와인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덤으로 먹거리까지 저렴하게 사 올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원으로 즐거운 파티 준비하기’라는 정책에 어긋나 포기했다. 장을 보려면 약속 시각보다 최소한 2시간 미리 도착해야 함은 물론, 택시에 물건을 싣고 다시 내리고, 4층까지 옮겨야 하는 막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게스트한테 '차’를 부탁해도 문제였다. 맥주 마시러 올 사람에게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2안으로는 '편의점 픽업’을 고려했다. 각자 자신이 먹을 '1만원’ 어치 술을 사 오면 현장에서 현금 1만원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운반계 크라우드소싱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까먹고' 안사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맥주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그래서 3안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마침 참가자 중에 '벨루가' 멤버가 있었고 그 즉시 김상민 벨루가 대표와 멤버 두 분께 각각 페이스북 메신저와 카카오톡을 통해 문의를 드렸다. 인원과 예산을 전달한 뒤 그로부터 며칠 뒤 견적서를 받자마자 바로 입금 성공. 파티 장소까지 손수 배달을 해주는 데 마다할 리 만무하다. 



케이터링으로 맥주는 해결. 그다음 해결할 과제는 바로 먹거리. 먹거리는 손쉽게 해결했다. 바로 카카오톡 장보기 서비스를 통해서다. 카카오톡 장보기에서는 원하는 시간에 예약배송을 신청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배송상품을 포장할 때 일부 제품의 경우 '품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장소 소유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다행히 스페이스 M에서는 오후에 배송될 먹거리와 맥주를 밀이 받아주겠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다행히 아닐 수가 없다.


사실 여기까지가 행사기획/준비의 팔 할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그램 기획은 따로 시간 내서 하진 않았고, 생각 날 때마다 손봤다.



초대장제작


생산성 파티답게 초대장은 에버노트 공유링크로 준비했다. 단호함을 어필했다. 이미 초대장에 써둔 내용에 대해 50명으로부터 문의를 받을 경우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참가자로부터 꼭 준비해오라고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름표’였다. 3만원이라는 입장료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40~50만원 상당의 대관료, 80만원 상당의 술, 그리고 15만원 가량의 먹거리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남은 돈은 '0원’이었다. 그런데 파티를 한다고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이름표' 정도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걸 인쇄할 돈도, 디자인할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은 자신의 이름표는 자신이 직접 인쇄해오는 것.


이름표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벤트가 됐다. A4 크기로 인쇄해온 이름표를 등판에 부착하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현장에서 본인더러 이름표좀 붙여 달라는 요청도 꽤 많이 받았다.



프로그램 운영 방식에 대해 한 5초 정도 고민해봤다.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아무 이야기나 해보세요’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행사를 진행하고 싶진 않았다. 제대로 된 네트워킹이나 대화가 이뤄질 리 만무했다. 그래서 구글 폼으로 입력받은 생산성 관심사 순위(1~3위)를 토대로 대화 그룹을 정했다. 이것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다. 1, 2, 3, 4, 5 순위를 제대로 기입한 사람도 있지만 (2, 2, 2, 3, 4) 나 (1, 1, 2, 3, 5) 식으로 쓴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행사 d-1


행사 바로 전날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전체채팅방을 생성했다. 행사 전날 미리 알아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장소를 찾아올 방법을 몰라 헤맬 영생들을 다른 이들이 나 대신 구원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리고 주제별 그룹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배정한 키워드 그룹장만 카톡 그룹 채팅방에 초대, 부디 행사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미리 남겨놨다. 




행사당일


행사 당일, 약속 시각보다 10분 미리 도착하니 김세련 피플펀드 마케터가 먼저와 있었다. 세번째로 온 이하나 프레인글로벌 AE와 셋이서 이마트에서 온 먹거리를 준비하다보니 이봉호 조이 매니징 애널리스트와 이민호 카카오 데이터 분석가가 오셨다. 힘센 남성분들이 테이블을 세팅하는 가운데 속속들이 게스트들이 장소를 가득 채웠다. 1인당 최대 4병/4캔씩 배분된 맥주를 정량대로 나눠주는 데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7시 정각부터 행사 프로그램을 시작, 오후 11시가 되어 그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호스트인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네트워킹을 하지 못했다.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ㅠㅠㅠ 그마저도 호스트가 8도짜리 흑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취하는 불상사(?)가 발생해버렸다. 그래서 행사 후반부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당일 가져간 물건 잘 챙겨온 것도 신기할 노릇이다. 다만 정말 많이 취했는지 벨루가 쪽에서 제공해준 물티슈를 가방에 모두 담아와 버렸다.



행사 이후


사실 4시간 남짓 숨 가쁘게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네트워킹이 잘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소모임이나 벙개 모임을 통해 서로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볼 계획이다. 벌써 판교 모임, 12월 29일 모임, 책쓰기 모임 등이 생겼다. 물론, 단순히 먹고 마시는 모임에서 끝나지 않고, 뭐라도 얻어갈 수 있는 생산적인 모임이 되도록 모임 리더로서 화두는 먼저 던져볼 생각이다.



감사 인사


어쨌든 나는 처음 도전해본 파티 기획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파티 참가자의 80%가 내 지인이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친분을 다져온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나는 파티에 와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나만 믿고 귀찮은 구글 폼도 작성해주고, 돈도 보내주고, 황금과 같은 토요일에 와서 놀다가 가신 점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홈파티 할 때 초대하겠습니다 :0


그렇기에 이런 파티를 비(非)지인을 대상으로 연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무모한 일이다. 파티 참가자 대다수가 호스트의 평판을 참고하기 때문이다. 평판이 좋다면 인생에 한 번쯤 기획해도 좋지만, 사실 그러기엔 공수는 많이 들고 피곤한 일이다. ㅠㅠ 그래도 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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