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양손을 바삐 움직일, 활동이 너무나 필요했어요
나는 두부조림 킬러다. 엄마가 아침에 밑반찬으로 두부조림을 한 냄비 가득 해두고 출근하면, 밥 없이 두부조림만 먹는다. 남동생도 나처럼 두부조림 킬러다. 그래서 엄마는 자주 두부조림을 반찬으로 내놨다. 독립한 지도 3개월 차. 엄마가 만들어 준 두부조림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래서 산 두부 2모. 아뿔싸. 지난주 2박 3일간 제주도로 출장 다녀오느라, 주말 내내 장염으로 고생한 터라 두부가 있다는 걸 까맣게 잊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두부 2모가 나를 반겼다. 유통기한!=식품이 안전한 기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다. 냉장 온도도 4도로 최적화돼 있으니 먹어도 탈 나서 죽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 독립 후 첫 반찬으로 두부조림을 만들게 된 이유다.
사실 이건 부가적인 이유다. 그냥 양손을 바쁘게 하고 싶었다. 자꾸만 스마트폰 세계에 빠져드는 나를 현실 세계로 빼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레시피를 보려면 스마트폰을 봐야 한다. 그러나 재료를 씻고 다듬고, 양념장을 만들고, 고기를 굽고, 국물을 젓고 맛보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온전히 요리를 만드는 내 자신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이런 아날로그틱하면서도 낭만적인 취미 생활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이러다 진짜 나중에,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로 '아내의식탁' 레시피를 참고한다. 웬만한 소스 재료를 갖추면 소개된 레시피를 모두 다 만들 수 있다. 서비스 이름이 아내의식탁이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만, 특히 결혼한 여자가 요리해야 한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레시피에 쓰인 대로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10분간 재운다. 괜히 두부 2모를 한꺼번에 만들려고 했다가 20분 넘게 두부를 썰고, 재운 것 같다. 두부를 프라이팬에 굽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두부들을 양면 노릇하게 구워내는 데는 시간도 퍽이나 오래 걸린다. 그렇게 잘 구워낸 두부를 깊은 냄비에 넣는다. 다시다 육수를 넣으라고 했지만 만들기 귀찮아서 패스.
대신 청양고추를 레시피에서 쓰인 양의 2배를 넣었다. 그냥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아니, 원래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 매운 것을 먹으면서도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9살 때인가, 가족이 찬 차량이 6중 추돌 사고를 당해서 트렁크에 실은 고추장 단지가 깨졌을 때, 난 그 고추장 단지에 손가락을 푹 넣어 고추장을 찍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매운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 침이 고이네.
암튼 이렇게 청양고추, 대파, 양파를 곁들인 두부조림을 보니,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 싶었다. 레시피에선 물 1컵(두부 2모니까 물 2컵)을 넣으라고 했는데, 정량보다 조금 넣었는데도 물이 넘쳐 흘렀다. 두부조림이 아니라 두부찌개가 됐어. 흐엉 ㅠㅠ 엄마가 만들어준, 양념이 자글자글 끓는 두부조림을 만들고 싶었는데 물량 조절에 실패했다.
모처럼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는 내게 저녁밥 먹었느냐고 물었다. 두부조림을 먹었다고 했다. 두부조림도 만들어 먹을 줄 아느냐고 엄마가 내게 다시 물었다. 두부 자체가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물이 많이 생겼다고, 나는 답했다. 엄마는 양념장에 물 조금만 넣어도 된다는 팁을 알려줬다. 나는 엄마에게 "먹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직접 만들어보니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인 줄 몰랐어. 특히 두부 양면을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굽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들어?"라며 어리광을 부렸다. 엄마 왈, "예전에 이재명 시장 와이프가 tv에 나오는데, 자른 두부를 그냥 냄비에 넣고 양념장 넣어서 끓이더라. 엄마도 그렇게 해 먹었더니 더 부드럽고 맛있었어. 프라이팬에 안 구워도 돼". 으어. 괜히 프라이팬 앞에서 고생했잖아.
내가 만든 두부조림도 나름대로 맛있는데, 그래도 엄마가 해 준 두부조림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