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엑티브엑스 때문에 서류 인쇄하는 거 개힘듭니다 ㅠ.ㅠ
집도 구했겠다, 전세 계약도 했겠다. 이제 다음 순서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일이다. 2번째 글에서 이야기 한대로 집 계약 전에 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대출 한도를 미리 알아본 뒤 예산에 맞는 금액대의 매물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집주변 근처에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상담은 안 받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서도 전세자금대출과 관련한 상담은 회사가 밀집된 지역에 위치한 은행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다. 전세자금 대출 상품의 경우 대출자의 연봉을 기준으로 대출 실행가능액을 따지다 보니, 아무래도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하는 직장인들이 주 이용자다. 따라서 해당 문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해당 대출 건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처리해본 행원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에 전세자금대출 상담을 받으려고 오전 반차를 내고 본가 근처 은행을 방문했다.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관련 두꺼운 책자를 찾아보면서 대응하는 모양새가 영 미덥지 않았다. 고객 앞에서 상관한테 전화해가면서 하나하나 확인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초짜’를 앉혀놨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을 보고 내 판단을 확신했다.
일단은 버팀목 전세자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 내역만 확인하고 다시 회사 근처 주거래 은행도 다시 방문했다. 수차례 전세자금대출을 실행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필요 서류가 무엇인지 재차 확인해주는 것은 물론, 몇가지 유의점도 부가적으로 알려줬다.
"최대 대출한도가 연봉 기준 3.3배라고 해도 모두가 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개인 신용도 따라 다르고 재직기간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세대주 독립한 지 얼마 안 됐고(서류 제출 전 전입신고를 했다), 고객님은 특히 이직한 지 얼마 안됐으니까(한달은 넘었지만 두달은 좀 안된 상황이었다) 심사 단계에서 떨어질 수 있어요. 저희가 그런 게 아니라 공사에서 그렇게 기준을 잡아놨어요. 실제로 이런 서류를 제출해도 최대한도 1000만원까지만 해주더라고요"
"하지만 낙심하지 말아요.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드릴 수도 있어요"
뭐가 됐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생긴다 싶어서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계약부터 했다. 정 안되면 엄빠 찬스를 쓰면 됐고, 그거마저 여의치가 않으면 은행 신용 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하면 될 거라는 심산에서였다. 왕복 3시간 걸리는 출퇴근을 감내하느니, 은행에 대출 이자를 더 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문제는 은행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전세자금대출 신청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은 은행에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아닌, 은행에 제출할 서류를 만드는 것이었다. 엑티브엑스로 무장한 각 사이트에 방문해서 내가 원하는 서류를 데는 게 정말 만만치 않았다. 맥북에서 가상 윈도우 프로그램을 설치,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으나 두손 두발을 들었다. 결국, 회사에 비치된 공용 윈도우 컴퓨터에 공인인증서를 옮겨놓은 뒤 필요한 서류를 겨우 재발급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쓴 내 시간 자원이 정말 아깝다
(1)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서
인터넷 등기소(http://www.iros.go.kr/PMainJ.jsp)에서 바로 신청할 수 있다. 공인인증서와 계약서 스캔본이 필요하다. 1부당 600원씩 비용이 든다.
(2) 임차목적물 등기부등본
이 역시 인터넷 등기소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3) 주민등록등본
민원24에서 전입신고부터 먼저 해야 한다. 필자처럼 생애 처음 독립하는 케이스라면 세대구성->세대전부 전출을 선택하면 된다. 무료다.
(4) 회사 직인이 날인된 재직증명서
회사 날인이 찍혀 있지 않으면 반드시 받아오라고 시킨다. 헛걸음하지 않으려면 직인 날인 여부를 필수로 확인해야 한다.
(5) 소득금액증명원 또는 회사직인이 날인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 소득증빙서류
전 직장 월급 명세서는 심사 서류에 포함되지 않는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소득금액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없다면, 현재 직장에서 받은 월급명세표를 인쇄해가도 좋다. 현재 직장에서 전년도 연말정산을 했다면 국세청 홈택스에서 소득금액증명원을 발급받을 수 있다.
(6) 임차보증금 5% 이상 납부영수증
이건 부동산에서 알아서 떼준다.
(7) 4대 보험 가입내역 확인서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센터(www.4insure.or.kr/ins4/ptl/Main.do)에서 증…
(8) 건강보험자격 득실확인서
이번 은행 전체자금 대출받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카카오뱅크는 진짜 말 그대로 '혁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상품이 바로 그것이다. 공공기관 사이트 가서 수많은 액티브x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대기하고,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그런데도 안돼서 잠시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았던, 나 같은 잠재적인 전세자금대출자를 구원해줄 상품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나는 은행으로부터 예정대로 1억 800만원을 전세 자금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다. 연 이자율은 2.7%, 원금은 만기일시상황이지만, 중도상환에 따른 수수료가 없어 원할 때 언제든지 신한은행 앱을 켜서 원리금을 갚아나갈 수 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매월 최대한 갚을 수 있는 만큼 갚아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인 재테크라는 답을 들었다. 원금을 갚지 않으면 매월 꼬박 24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내야 한다. 하지만 매달 200만원의 원금을 꼬박 갚으면 1년 뒤 10만원 후반대 이자만 내도 된다. 그 어떤 재투자를 해도 이것보다 낫겟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2년 뒤 4800만원(매월 200만원씩 2년간 갚으면 이 정도다)의 돈은 내 자산이 된다. 물론, 2년 뒤에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집으로 이사한다면 오롯이 전세자금으로 사용될 자금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여윳돈이 생긴다면 저축이나 투자보다는 빚 상환이 먼저라고 말한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인 시대에 시중금리를 웃도는 이자를 부담해가며 대출을 이어나가는 건 명백히 손해라서다.
한편으로는 지난 사회생활을 몇 년 했는데, 은행의 도움 없이 내가 살아갈 방 한 칸 마련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은행 대출 상담을 하던 행원은 "1억(원)은 뉘 집 개 이름인가요?"라며 내 상황(사회 초년생의 월급으로 구하기엔 너무나도 비싼 집값)을 위로했다. 서울로 올라온 지방 출신 사회초년생들이 사회에 나와 처음 접했을 벽(집)이 높아 암담함 그 자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혼자 살 집이니까 원룸이어도 상관이 없는데, 신혼집을 구하는 거라면 이렇게 여유롭게 집을 구하고 있었을지 간담이 서늘해진다. 요즘 따라 유전무죄 무전무죄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다.
어쨌든 이 나라에선 순수한 노동력만으로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들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전략적으로 재테크를 해야 한다. 그조차도 안 하면 가난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