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11. 이별의 힘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111.


새해를 맞이해 미루고 미뤄왔던 서재 정리를 했다.

남들에겐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만의 새해 루틴 중 한 가지다.


새해 첫 주말에 행해지는 연례행사지만, 올해는 신년초 주말을 도쿄라는 먼 타지에서 보내는 바람에 두 번째 주말이 ‘D-day’가 되고 말았다. 명백히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이지만, 가족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다 보니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라 봐야 '구석탱이 작은 방(보통은 서재라 명명하지만, 이런저런 잡동사니들로 창고에 가까운)'이 전부다. 아내가 ‘당신 창고’라 부르는 구석탱이 방에는 나의 모든 작업물들이 탄생하는 ‘책상과 컴퓨터’, 나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책장과 책들’,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 요즘 같은 계절에 급한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 나의 신체건강을 책임지는 ‘운동기구 몇 가지’ 그 외에 내 눈엔 ‘보물’로 보이지만, 아내 눈에는 '쓰레기'로 보이는 몇몇 잡동사니들이 혼재되어 동고동락하고 있다.

영화 ‘토이스토리’의 주인공들처럼 이 녀석들에게 자의식(自意識)이 있었다면 아마 뒤에서 주인장 욕을 엄청 했을 것만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정리를 한다고 하는 편이지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저분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새해가 될 때마다 '일종의 의식'처럼 시작한 일인데, 10년 가까이하다 보니 이제는 루틴이 되어 버렸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을 접하면서였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란 책에서 그녀는 말한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리고 ‘한 번에, 단기간에, 완벽하게’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게 생각보다 공감 가는 말인 게, 하나씩 버리려고 하면 ‘언젠가는 필요할 거야',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버리는 날’을 정해도 좋겠다 생각한 거다.


나만의 정리법을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는 새해가 되면 내 방에 있는 모든 집기와 물건을 모조리 거실로 빼내 '완전한 빈 방'을 만든 다음 가구 배치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이른바 ‘모조리 비운 후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시간과 노력이 꽤나 들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1년에 딱 한번 하는 연례행사인데 이 정도 수고는 괜찮다는 생각이다.

이 방식의 장점이라면, 뭐가 대체 어디에 처박혀있는지조차 모르고 산 물건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것과 하나하나 다시 채워 넣는 과정을 통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깔끔한 정리정돈은 덤이다.

적어도 1년이란 시간 동안 그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건, 그 가치가 어떻든 간에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일 확률이 크다. 이런 물건들은 과감히 처분하거나 버린다. 누구에게나 애착 가는 물건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좀 있는 편이라 작은 방안을 꽉 채운 책들로 항상 골머리를 앓았더랬다. 하지만 이제는 '1년간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책'은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버려지는 책의 양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음에 놀라곤 한다.


가끔은 떠나보내 놓고선 나중에 필요함을 깨닫고 다시 사는 촌극을 벌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또한 그 물건과 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옆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몰랐다가 이별하고 나서야 더 생각나고 후회가 남는 사람이 있듯, 떠나보내야만 소중함을 알게 되는 물건도 있다. 그렇게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난 물건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애정이 간다. ‘이젠 다시는 볼 일 없을 거야. 잘 가!’라고 작별을 고하는 순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물건이 내 물건일리 없으니까 말이다.

이른바 ‘이별이 깨닫게 해주는 힘’이다.

그렇게 헤어졌다 다시 만난 녀석들이 나의 창고엔 꽤나 많다.

한 번씩 작별한 후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만난 녀석들인 만큼 내겐 나름의 ‘보물’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나의 이런 행동이 ‘낭비’라며, 그냥 처음부터 버리지 말라고도 하지만 나로서는 ‘진짜 내게 필요한 가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 정도 수업료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게라도 오래도록 잘 쓸 수 있다면 방치해 놓고 거들떠보지 않는 것보다 덜 낭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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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루틴을 시작하고 나서 반대로 물건을 살 때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정말 내게 필요한 물건일까?’ 한 번 더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신중히 고른 물건일지라도 내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생각이 들면 과감히 반품하거나 처분한다.

그러면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어떤 게 내게 진짜로 필요하고 어떤 게 하등 필요가 없는 것인지를..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이런 ‘이별의 힘’을 세상 모든 것들에 적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옷이나 물건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헤어져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새해가 될 때마다 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어쩌면 헤어지기 전에,

떠나보내기 전에,

그 진가를 알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은 다시 월요일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듬뿍 정을 줘 볼 작정이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고 나서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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