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짬 없던 시절에는 윗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는데,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랫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아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거나, 혹은 요즘 세대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도 메신저로 울리는 메시지 알람. '선배! 긴급! 잠깐 시간 어때요?' 이런 경우 여지없다. 뭔가 특별한 이슈가 발생했거나, SOS 요청 둘 중 하나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기 무섭게 속사포처럼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선배 정말이지 요즘 너무 힘들어요. 다음 주 론칭하는 상품 준비해야지, QA팀에선 성적서 달라고 난리지, 영업전략팀은 지난주 매출자료 취합해 달라고 난리지, 참석해야 하는 미팅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이 와중에 팀장님은 협력사 외근 안 가냐고 닦달까지 한다니까요? 정말이지.. 요즘 아슬아슬 곡예사가 된 느낌이에요!'
곡예라..
영어표현 중 '곡예하듯'이란 뜻의 'Juggle'이란 단어가 있다. 여러 물체를 공중에 던지고 받는 '저글링 하다'는 뜻도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능숙하게 처리하다'는 비유적 표현으로도 많이 쓰인다.
흔히 기획이라고 하면 잘 짜여진 프로세스를 생각한다. 때문일까? 기획자가 하는 일 역시 정해진 순서에 맞게 순서대로 차곡차곡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기획은 수많은 불확실성을 동반한 채 떨어지는 공들을 필사적으로 낚아채 다시 공중으로 올려놓아야 하는 '저글링(Juggling)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상품기획자로 산다는 건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저글링 곡예사'와 비슷하다.
‘매출’, '분석', '일정', '디자인', '상품', '배송', 'QA', '미팅', '파트너사', '고객관리' 등 상품기획자라면 다뤄야 하는 수많은 공이 존재한다. 기획자는 마치 곡예사처럼 이 모든 공들을 공중에 띄워 컨트롤해야 한다. 공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프로세스 또한 진척이 가능하기에, 기획자는 쉴 세 없이 떨어지는 공들을 공중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처리할 수도 없기에, 다음 공이 떨어지기 전에 손에 쥔 공을 재빨리 공중으로 다시 올려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잠시도 손을 쉴 수 없다.
그래서 '기획자'는 '저글링 곡예사'와 닮았다.
'능숙한 곡예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시선은 공이 아닌 '궤적'을 보라.
저글링을 처음 배울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손에 쥐어진 공 혹은 떨어지는 공 하나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리듬이 깨진다. 숙련된 저글러의 시선은 '공'이 아닌 공이 그리는 전체적인 '궤적'을 본다.
기획 일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당장 터진 이슈(CS, 정산 오류, 협력사 불만)라는 '공'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다 보면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일들이 결국 어떤 결과물로 완성되는지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2. '받기'보다 '던지기'가 중요하다
저글링의 핵심은 '잘 받는 것'이 아니라 '잘 던지는 것'이다. 제대로 된 높이와 힘으로 던져진 공은 제때 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기획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던지기는 '문제점을 찾는 것'이고, 받기는 '솔루션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많은 기획자들이 심박한 아이디어와 솔루션에 목을 메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불행히도 이는 잘못된 접근법이다. '기획의 고수'일수록 분석과 문제점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잘못된 문제 진단은 곧 잘못된 솔루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3. 공의 개수를 조절하라
저글러의 실력은 다루는 공의 개수로 증명된다. 공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관객들의 탄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가장 멋진 공연은 '떨어뜨리지 않는 공연'이다.
기획 또한 마찬가지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너무 많은 변수를 통제하려다 결국 모든 기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획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획자로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어찌 되었건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4. 떨어뜨린 공을 처리하는 자세
아무리 뛰어난 곡예사라도 공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건 떨어진 공을 보며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손에 들린 공들을 여전히 리듬에 맞춰 유지하는 것이다. 하나가 실패했다고 기획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원을 활용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시간을 번 다음,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진 공을 다시 주워 올려 궤적에 복귀시키는 회복탄력성.
기획 고수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법이다.
'고수'와 '하수'의 결정적 차이도 여기에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기술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잘하는 건 공을 잡는 기술이 아니라,
공이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던져 올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라는 것을..
기획이란 결국,
깨질 것 같은 유리 공들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지독한 평정심'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