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119.
월요일 아침. 평소와는 사뭇 다른 어수선한 풍경이다.
친한 후배 녀석에게 '분위기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물었더니
'이번 주에 승진발표 난다는 소문이 있데요. 그래서 다들 난리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처음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사실 승진(昇進)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들의 승진은 물론이고, 나의 승진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승진보다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나 스스로 일을 잘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연봉이든 직급이든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직급이 올라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곤 한다. 반대급부로 그만큼의 책임 또한 뒤따르긴 하지만, 그에 걸맞은 능력만 뒤따라준다면 '직급' 혹은 '직책'은 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능력이 뒷받침된다는 가정하에서다.(반대로 자리에 비해 능력이 부족해 나락 가는 경우도 수 없이 목격했다. 그런 면에서 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이들은 승진(昇進)이란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물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짜 본인의 실력이 중요하지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급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나 큰 조직일수록 나 혼자만 하는 일이 아니기에 나를 따르는 후배들, 나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더더욱이나 '나의 성장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나의 성장이 다른 누군가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승진에 관심 없어요'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승진이나 진급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회사보다는 수익성이 좋은 부업에 더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는 한 리서치 결과도 본 적이 있다.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는 ‘조용히 그만두기’, 관리자로의 승진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의도적 언보싱’이 요즘 트렌드라는 말도 들린다.
솔직히 대충, 적당히라는 단어가 통용되지 않는 기획자라는 직업을 가진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마케팅적인 관점에서도 승진(昇進)은 매우 중요하다.
세스 고딘(Seth Godin)은 그의 저서 '마케팅이다(This is Marketing)'에서 ‘위상(Status)’과 ‘연대(Affiliation)’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 개념이야말로 사람들의 행동을 이끄는 중요한 동기이자,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주장한다.
1. 위상(Status) :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거울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위치, 특별한 위치에 있고 싶어 하는 욕구는 우리가 무엇을 사고,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 내가 더 특별해 보일까?'
'이 서비스를 통해 내 가치가 높아질까?'
명품 가방이나 한정판 스니커즈, 프리미엄 자동차는 물론이고, 고급 멤버십이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는 행위들 모두 위상 상승의 욕구를 자극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명품백을 산다는 것은 '명품백 자체의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이 정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위상 상승 욕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2. 연대(Affiliation): 소속되고 싶은 인류의 본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때문에 소속감을 통해 안정감과 유대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을까?'
'이 커뮤니티에 속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 특정 스포츠팀의 팬들,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자신을 특정 그룹의 일원으로 정체화하고 소속감을 느끼며 자부심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들 또한 연대와 관련이 깊다. 단순히 취향으로 묶인 공동체의 연대도 이 정도 의미를 가지는데, 연대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공동체야 오죽할까!
위상(Status)과 연대(Affiliation)라는 개념을 적용해 '승진(昇進)'의 풍경을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직장 내에서의 승진이란 단순히 연봉이 오르고 직급이 바뀌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세스 고딘이 말한 위상의 재편이자 연대의 변화를 의미한다.
1. 위상(Status) : '나는 누구보다 위에 있는가?'
직장 내 승진은 전형적인 '위상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사원에서 대리로, 팀원에서 팀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조직도라는 사다리에서 내 위치가 상승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다. 내가 조직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외적 증거다. 더 넓은 책상, 더 많은 권한, 그리고 나를 부르는 호칭의 변화들은 나의 위상을 즉각적으로 상승시키는 수직적 증거가 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이다. 위상은 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동기보다 늦은 승진은 나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준다. 심지어 내 위치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2. 연대(Affiliation) : '누가 나의 동료인가?'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승진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승진은 내가 소속된 '우리'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팀원에서 팀장이 된다고 해보자. 이는 실무자들의 연대에서 관리자들의 연대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상사가 되었을 때 느끼는 묘한 소외감은 연대의 축이 이동하며 발생하는 성장통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리더의 승진은 단순히 위상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얻는 것이다. 내 목소리가 더 멀리 퍼지고, 더 많은 팀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연대의 중심'이 되는 것, 그것이 승진의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보니 승진이 갖는 무게감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맞다! 직장생활에서 승진이 갖는 의미와 무게는 엄청나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이니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예전에 나 역시 승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승진의 의미 자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래서 리더가 된 나는 이 시기가 되면 어깨도, 마음도 한 없이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