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126.
얼마 전 정기인사이동이 있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같은 층에서 평소 자주 보이던 친한 후배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이번 정기인사이동 때 부서를 옮기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같은 층에서 일할 때 오가며 마주칠 때면 한 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던 후배 녀석이었는데..
매번 의례적으로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만 건네고 살갑게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언제부터일까?
누군가와 밥 한 번 먹는 일이 꽤나 힘든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커피 한잔 하자'라는 말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온도는 예전과 꽤나 달라진 느낌이다. 밥은 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커피는 시간만 내면 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인가 우리는 관계의 거리에 따라 메뉴를 달리 선택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겐 밥을 제안하고, 비즈니스나 막 알게 된 사람에겐 커피를 권한다.
밥은 관계를 깊게 만들고, 차 한잔은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생각해 보면 꽤나 흥미로운 구조다.
과거에는 ‘밥’이 관계의 기본 단위였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곧 친해지고 싶다는 신호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은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생각보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여기는 듯하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효율성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데는 최소 한 시간. 이동 시간까지 합치면 두세 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반면 커피는 2~30분이면 충분하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늘 부족하고, 그래서 관계 역시 점점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설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확장된다.
자리가 그 사람과 어떤 사이인지를 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가벼운 커피 한 잔의 자리보단, 오롯이 밥 한 끼를 나누는 자리에서 오가기 마련이다. 계약을 앞둔 자리, 진심 어린 사과, 혹은 쉽게 꺼내기 어려운 제안까지. 커피 자리에서 몇 번의 탐색을 통해 통과의례를 마친 사람만이 밥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커피로 시작해 → 밥으로 깊어지고 → 술로 솔직해진다'
이제는 어쩌면 사람 간의 관계에도 이런 식의 ‘퍼널(Funnel)’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가끔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흐름을 거꾸로 올라가기란 쉽지 않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술 한잔 하자”고 말하자니 부담스럽기 그지없고, 아직 어색한 사이인데 무턱대고 밥부터 먹자고 하는 것도 조금은 무겁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결국 '커피 한 잔'이 관계의 입구가 된 이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가끔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과는 커피 사이일까? 아니면 밥 사이일까?'
물론 둘 중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커피 한 잔'보단 '밥 한 끼'가 조금 더 서로의 시간을 내어준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 대부분 또한 오래 같이 밥을 먹었던 이들이다.
프로젝트 때문에 며칠을 붙어 다니며 끼니를 해결했던 동료들, 퇴사를 고민하던 시절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선후배, 별다른 목적 없이 저녁을 함께하던 친구까지. 관계는 함께 보낸 시간의 총량에 비례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나는 '커피 한 잔' 역시 좋아한다.
밥까지 가기 전, 서로를 부담 없이 알아갈 수 있는 완충지대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가벼운 '커피 한 잔'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도록 주선해 주는 중매쟁이와도 같다.
이렇다 보니 누군가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을 꽤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커피로도 충분했을 텐데, 두세 시간을 나라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뜻이니까. 나이가 들며 점점 그 무게감을 알아가기에 밥 한 끼 함께 하는 게 이리 힘든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꼭 그 후배 녀석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말해봐야겠다.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