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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영감 Jul 03. 2021

보잘것없는

1_발기효과


이상하다. 발기가 되지 않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다. 여자 친구 역시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나는 일단 긴급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그런 나의 노력에 애써 장단을 맞춰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슬쩍 올려다보니 그녀는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편의 애잔한 연극이 끝난 후 그녀는 다행히도 나의 성 기능에 관해 따로 우려를 표현하지 않는다. 남자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지켜진 셈이었다.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나를 등진채로 잠에 든다. 나는 어두컴컴한 모텔 방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약간 운동선수들이 겪는 슬럼프 같은 건가?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말짱한 느낌이다. 근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근데 아까 정말 왜 발기가 안됐지? 그 정도로 피곤한 건 아닌데. 그렇게 몇 시간을 혼자 뒤척인 끝에 동이 트는 것이 느껴질 때쯤 아슬아슬하게 겨우 잠에 빠져 든다.



"계세요?"


바깥에서 거칠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서 일어난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아, 맞다. 나는 어제 여자 친구와 함께 모텔에 왔다. 그리고 발기를 하지 못했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난다. 밖에서는 누군가 계속 문을 두들기고 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체크아웃 시간이 훨씬 지났잖아요. 연장하실 거면 돈을 더 내셔야 돼요."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12시 20분이다. 체크아웃 시간에서 20분이나 지났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나갈게요!"

"빨리 나오세요. 저희도 청소 스케줄이 있어서 빨리 해야 돼요."


방 안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혹시 몰라 화장실에 가보지만 역시나 비어있다. 아 맞다. 오늘은 수요일이니 그녀는 벌써 출근을 했을 것이다. 근데 어젯밤 연차를 썼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혹시 어젯밤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그냥 집에 가버린 건 아니겠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나는 바닥에 대충 벗어던져 놓은 옷을 빠르게 주워 입고 모텔 밖으로 나선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내 나이 또래 회사원들이 보인다. 자랑스럽게 사원증을 목에 맨 그들은 점심 식사를 하러 번쩍번쩍한 건물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 사이에서 혼자 만 원짜리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걷고 있으니 뭔가 발가 벗겨진 느낌이다. 그 나이 먹고 왜 아직까지 그렇게 사냐고 눈치를 주는 것 같다. 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마냥 그들의 눈을 피해 성급히 골목으로 들어간다.



"결국 발기를 못해서 차인 거네."

"아니라고."


나는 오랜 친구인 민제와 형우를 만난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유지해온 그들은 내가 자신 있게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내가 여자 친구한테 차였다는 소식을 듣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제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나 대학교 졸업하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계속 있었지."

"어쨌든, 발기 실패가 그 문제들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셈이네"

"공공장소에서 자꾸 발기발기하지 마라."


물론 내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온 것이 아니라 놀리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민제를 보면서 말한다.


"내가 너처럼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민제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20-30대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매일 같이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와중에도 그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와 달리 나는 지방에 있는 한 대학교를 졸업했고 이렇다 할 스펙이나 자격증도 없었다. 사실 대학교도 막연하게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녔다. 딱히 뜻이 있어서 대학에 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가니까 나도 왠지 대학교 졸업증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 맞이한 사회의 첫 모습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어처구니없는 녀석에게 기꺼이 기회를 주려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원하는 곳마다 모두 다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정말 그냥 그렇게 허비했구나.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인생이 망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글쎄, 그것보다는 솔직히 최근에 네가 전체적으로 좀 많이 다운되어 있긴 했잖아. 처음 봤을 때랑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지쳤거나 실망했을지도 모르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형우가 한 마디 더 보탠다.


"그리고 결국 성기능까지 잃어버렸으니까…."


형우는 아직 대학교 4학년이다. 나는 빨리 그가 대학을 졸업해 취준생이 되어 성기능을 잃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형우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낙천적인 사람이다. 내가 선천적으로 항상 생각이 많고 조급한 편이라면, 그는 항상 단순하게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느긋함을 유지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취준생 스트레스가 과연 그런 형우까지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 졸업하고 내가 사소한 일에 많이 짜증을 내고 예민하긴 했어. 지금 내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지질했다. 지금까지 걔가 참고 이해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진짜로."


나의 갑작스러운 취중 진담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형우는 이제 더 이상 장난칠 분위기가 아니라고 느낀 것 같다. 민제도 애꿎은 맥주잔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년 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나의 삶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나의 긍정적인 모습과 쾌활함에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라는 벽에 부딪치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나 자신도 이러한 변화에 놀랄 정도였으니, 그녀 역시 확실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예전과 달리 말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다른 친구들은 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백수로 그냥 여자 친구랑 데이트나 하고 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생 때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물 흘러가듯 살아왔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마주한 사회에서는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주변에서는 첫 직장이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결정한다고 겁을 주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첫 직장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속으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자 오히려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늘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와 그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걸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같이 어디를 놀러 가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어떻게든 무너져가는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보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해졌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갑자기 굉장히 불편한 일로 변했다. 커피나 저녁식사 그리고 모텔 비용까지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나의 찐따 같은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곧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계속 위로했다. 그러나 취준 생활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 또한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어젯밤 이쯤에서 그만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이런 날이 곧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헤어지자는 소리를 들으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붙잡는 건 인간대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뇨기과에는 가본 거야? 너 그거 꽤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길어지는 침묵을 못 견딘 형우가 마침내 다시 발기 얘기를 꺼낸다. 민제는 옆에서 웃음을 참는다. 어찌 됐건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이고, 나는 소중한 친구들이 이렇게나마 나의 불행한 순간을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별로부터의 슬픔과 여운은 적어도 앞으로 몇 달간 계속 나를 괴롭히겠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오늘 아침 내 성기능이 아직까지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내 인생 아직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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