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일까? 네가 시인이란게 아빠는 참 좋구나!
아빠 뭐해?
시를 쓰고 있어.
아빠는 시인이 되고 싶거든.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9살 무렵이였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종종 끄적거리는 실력도 없고 철도 없는 아빠 옆에 앉아서 ‘아빠 뭐해’라고 묻는 딸에게, 부끄럼 없이 ‘시를 쓴다’고 말했다. 딸은 자기도 써 보겠다고 하며 아빠의 포스트잇을 빌려 자신의 시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둘째의 시선과 언어는 천상 시인의 그것과 닮아있었고, 아빠는 둘째 딸의 시들을 읽는 기쁨을 종종 누릴 수 있었다.
심심한 둘째는 요즘 종종 찾아와 함께 시를 쓰자고 한다. “어떤 주제로 하면 좋을까?”라는 아빠의 질문에 고민하며 대답하는 둘째의 표정은 정말 아름답다. 잠깐 자기 방으로 사라져 들고 나오는 시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시인의 재능이 없거나, 혹은 세상사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자문하게 한다.
시는 무엇일까?
얼을 깨우는 언어이거나
깨어난 얼의 노래이리니
시가 없는 삶이라는 건
그 얼마나 시시하던가
질문이 사라진 어른은
시를 쓰지 못해 늙고
시를 쓰지 못하는 젊은이는
사랑하지 못하게 되더라
시는 무엇일까라는 너의 물음에
네 영혼과 내 영혼이 함께 속삭이는
마법의 대화라고 말하고 싶구나
네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아빠를
미소짓게 하는구나
미끌 미끌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얼음
시원 시원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얼음
비나 눈이 오는 날
날씨가 추워 생기는 얼음
얼음의 종류는 정말 많아
얼음의 종류는 또 뭐가 있을까?
얼음은 무얼까?
흐르지 못해 답답하던가
바다가 그리워 외롭던가
냉혹한 세상에
빼앗긴 온기가
봄과 함께 다가오겠지
다시 흐를 날이 온다 하겠지
길의 종류는 무엇이 있을까?
빙판길은 사람을 넘어뜨려
꽃길은 사람들을 냄새로 유혹시켜
열매가 있는 길은 열매를 사람들이 따다가져가
아무것도 없는 길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지
숲길은 사람들에게 맑은 공기를 주지
이렇게 길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거나
유익하지 않지 어떤 길이든 말야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길이 유익한지 유익하지 않는지 결정되지
길의 종류는 많아
하지만 길의 평판은 우리가 결정해
길의 종류와 장단점을 생각해봐
산이 깎이며 "나를 깍지마 아프단 말야"하고
말하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나무 가지 치기를 할 때 "가지를 자르지마
나도 생명이야"하고 말하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봄이되면 다시 가지가 자라난다고
조금만 버티자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니?
가지가 다시 자라나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곤충들이 날개를 뜯지 말라고
밟지 말라고 말하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나를 놓아달라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나를 그만 괴롭히라는 목소리를 들어봐
누가 나를 밟고 갂으면 좋겠니?
이 소리가 들리지 않니?
시는 질문이다. 잠든 우리를 일깨우는 이들이 시인이다. 시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축복이다. 아이들 모두가 천부적인 시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리석은 어른들이 우리 옆의 시인들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평생 마음가는데로 시를 쓰고, 시에 담고자 하는 너의 마음이, 세상과 온전히 통할 수 있기를 아빠는 응원한단다.
시란 무엇일까?
네가 시인이란게 아빠는 참 좋구나!
2018. 1. 26. 시인과 함께 살고 있는 질문술사
딸들과 함께 '질문을 걸어오는 가족시집 [박씨전]'을 출간하고 싶은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