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야'
사람은 빛의 모습을 추구한다고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두움을 의식화해야 밝아진다.
_ 칼 융
동행(同行)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따라잡으려 해도 시커먼 너는
항상 내 앞을 달린다
뒤돌아 죽어라 뛰어도
넌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구나
피터팬처럼 날아다니려면
네가 없어져야 할텐데
너는 왜 날 놓아주지 않는거니
커다란 어둠 속에 둥지를 트니
네가 보이지 않아 좋구나
이젠 세상의 어둠을 마주하며
목 터져라 증오와 불평을 쏟아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야'
네 속삭임이
화들짝 나를 깨운다
그래 빛으로 다시 나아가자
너와 함께 말이야
나는 따뜻한 빛을 즐길테니
너는 시원한 그늘을 창조하렴
처음으로 내게
웃으며 손짓하는 너를 본다
2013. 5. 1
질문술사
십여년 전 코칭을 배우고 훈련하던 초기에 동료 코치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나눈 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 어떤 코치님께서 이런 질문을 주셨다.
"꿈을 꾸어야 할까요?
꿈에서 깨어나야 할까요?"
강렬한 질문이였고, 종종 그 질문을 참오하곤 한다.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한동안 큰 의미를 두었지만, 아둔하고 탐심을 버리지 못해 작은 꿈을 더 큰 꿈으로 가리며, 꿈을 꾸지 않고 있는 척 하곤 했다. 이것 역시 미몽이라는 것을 여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며 힌머리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거울을 보며 우울해지는 것은 다만 나이듬에 대한 것이 아니였고, 뜻한 바들을 거의 다 이루고 나서 허무함에 머물러서였다. 사실 지금의 일상은 이전에 원하던 바와 매우 가까운 삶을 누리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미 이루고 난 꿈들은 생기와 활력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남은 꿈이란 훌륭한 지인들과 소소한 교류를 하는 것 정도이고, 그 역시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늙어가고 있는 영혼이 되어버린 듯 우울함이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며칠 전 아내와 이야기를 한 후에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정리하는 일이나 먹고 사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거창한 일이 아니면 별로 마음을 다하지 않는 나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꿈을 꾼다면, 내 꿈은 주변을 청결히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함께 하는 이들과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수 있는 것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다시 생각하니 너무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꿈에서 깨어날 날이 언제가 될지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