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시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봄 Sep 11. 2018

동행(同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야'


사람은 빛의 모습을 추구한다고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두움을 의식화해야 밝아진다.
 _ 칼 융


시인 박씨의 동행, 그림자


동행(同行)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따라잡으려 해도 시커먼 너는
항상 내 앞을 달린다



뒤돌아 죽어라 뛰어도
넌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구나



피터팬처럼 날아다니려면
네가 없어져야 할텐데
너는 왜 날 놓아주지 않는거니



커다란 어둠 속에 둥지를 트니
네가 보이지 않아 좋구나



이젠 세상의 어둠을 마주하며
목 터져라 증오와 불평을 쏟아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야'



네 속삭임이
화들짝 나를 깨운다



그래 빛으로 다시 나아가자
너와 함께 말이야



나는 따뜻한 빛을 즐길테니
너는 시원한 그늘을 창조하렴



처음으로 내게
웃으며 손짓하는 너를 본다





2013. 5. 1

질문술사


십여년 전 코칭을 배우고 훈련하던 초기에 동료 코치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나눈 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 어떤 코치님께서 이런 질문을 주셨다.

"꿈을 꾸어야 할까요?
 꿈에서 깨어나야 할까요?"

강렬한 질문이였고, 종종 그 질문을 참오하곤 한다.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한동안 큰 의미를 두었지만, 아둔하고 탐심을 버리지 못해 작은 꿈을 더 큰 꿈으로 가리며, 꿈을 꾸지 않고 있는 척 하곤 했다. 이것 역시 미몽이라는 것을 여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며 힌머리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거울을 보며 우울해지는 것은 다만 나이듬에 대한 것이 아니였고, 뜻한 바들을 거의 다 이루고 나서 허무함에 머물러서였다. 사실 지금의 일상은 이전에 원하던 바와 매우 가까운 삶을 누리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미 이루고 난 꿈들은 생기와 활력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남은 꿈이란 훌륭한 지인들과 소소한 교류를 하는 것 정도이고, 그 역시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늙어가고 있는 영혼이 되어버린 듯 우울함이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며칠 전 아내와 이야기를 한 후에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정리하는 일이나 먹고 사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거창한 일이 아니면 별로 마음을 다하지 않는 나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꿈을 꾼다면, 내 꿈은 주변을 청결히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함께 하는 이들과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수 있는 것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다시 생각하니 너무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꿈에서 깨어날 날이 언제가 될지 아직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들어준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