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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Oct 28. 2018

비루한 시인의 하루

매일 보잘 것 없는 글을 쌓아간다. 오늘도 그렇다.


요즘, 이런 ‘액괴질문카드’ 만들며 논다.


詩足 : 시인 박씨의 하루


1. 시가 될만한 글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엔 니체와 괴테, 그리고 안도현 시인의 글을 자주 읽고 배껴쓰곤 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잘 읽히지 않은 니체의 글을 쉽고 날카롭게 풀이해줘서 좋다. 니체의 글을 벗삼아 원한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기만을 살펴본다.


2.

‘씀’이라는 앱을 가끔 본다. 매일 글쓰기 키워드와 마중물 같은 인용문을 올려준다. 오늘의 키워드는 ‘평범한 하루’였고,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를 인용했다. ‘보잘 것  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였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괜히 울컥한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_ 최민석 [베를린 일기] 중에서...


3.

3류 시인도 되지 못한 시인박씨는 남의 문장을 훔친다. 조금 비틀어 다시 쓰나, 누가봐도 표절이다. 아니다. 원문보다 못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4.

보잘 것 없는 시를 한두편 쓴 것도 사실이고,

아이들과 투닥거린 것도 나의 일상이다.

떨어진 낙엽들일 바라보고 속상해 한 것도

내 삶이니 표절한 문장 때문에 시를 버리긴 아깝다.

주절 주절 변명하며, 문장을 조금 더 고쳐쓴다.

아직도 비루한 글이나, 그래도 남겨둔다.




시인박씨는 수락산 자락에서 자주 논다.




비루한 시인의 하루



우울할 땐 니체를 읽는다

말하고 싶은게 있을 땐 시를 끄적인다

질문들은 ‘액괴질문카드’로 다시 만든다



애들과는 여전히 투닥거리고

회복중인 아내와는 잠깐 산책을 한다

비와 우박이 내린 후 낙엽들을 바라본다



매일 훌륭한 남의 문장을 배껴쓰고

매일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은 쌓아둔다

배껴쓰다가 도둑글이 되기도 한다



다시 쓰고, 고쳐 쓰며, 누더기가 된 글을

삼류 시인 박씨는 홀로 부끄러워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역시나 필요한 날이였고

여전히 비참한 날이였다

시인의 하루가 비루하다




2018. 10. 28. 질문술사

시인의 하루를 다시묻다


시인박씨는 이런 ‘액괴질문카드’를 만들며 놀고, 가끔 시도 끄적인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비루하나,
이런 비루함을 살아가는 나를
나는 아직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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