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시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봄 Nov 27. 2018

35살 이후

나는 ‘죽는 법’을 배우며 살았다

리타 테일러 쌤의 전기작업(biography) 중에 공부했던 글과 도표
35세 이후,

육제적인 힘은 쇠퇴하고 약해지며,
본능적으로 지상과 맺은 끈이 헐거워진다.
조금씩 육체로부터 벗어난다.

한편으로 삶이란 사는 법을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 죽는 법을 배우는 일로 보인다

_ [The Hunman Life]




  35세 이후


                      35살 이후로  ㄴㅏ는
                         ‘죽는 법’을  배우며 살았다

      월급쟁이로 살고자 하는  ㄴㅏ를 죽이자
                    반백수로 사는  ㄴㅐ가 놀더라
      장서가로서 살고자 하는  ㄴㅏ를 죽이니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사는  ㄴㅐ가 크더라

      전문가로서 살고자 하는  ㄴㅏ를 죽이자
                        친구로 사는  ㄴㅐ가 웃더라
             머리로 살려고 하는  ㄴㅏ를 죽이니
                     시인으로 사는  ㄴㅐ가 좋더라

                    40살 이후로도  ㄴㅏ는 여전히
                          ‘죽는 법’을  발견하는 중이다


죽고 삶을 다시묻다 (초고)

2018. 11. 29. 질문술사

어른이 되는 여정에서 죽고 삶을 다시 묻다


시족(詩足)  : 왜 죽음을 묻는가? (1/2)

  얼마전에도 죽음을 주제로 한 시를 써서 올렸다. 죽음은 내게 오래된 테마다.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묻지 말라던 스승도 있지만, 죽음을 알아야 삶이 달라진다는 스승의 가르침도 있다. 생명력 넘치던 시절이 지나자 점점 더 죽음에 대한 사유가 많아진다. 나는 매년, 혹은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한 해를 살아온 내가 또 죽어가는 중이다.


시족(詩足) 둘 : 왜 죽음을 묻는가? (2/2)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본능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려한다. 혹은 죽음은 필연적이니 살아있는 동안 충실한 삶을 살자고 다독이기기도 한다. 죽음은 필연이다. 그러나 생명이 꺼지는 죽음은 한번일지, 반복될지 나는 모른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무수한 죽음을 마주한다. 한 번의 생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자신의 일부라 여겼던 것들을 죽여 떠나보내는 경험을 한다. 어떻게든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달아나려 애쓰나 피할 수 없다.

  기꺼이 죽음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경계선을 건너야 할 때가 있더라. 아니 그 경계선 밖으로 내동댕이 쳐진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꿈을 꾸던  ㄴㅏ를 죽이자

꿈에서 깨어난  ㄴㅏ를 만난 것이

           아마도  그 출발이리라


시족(詩足)  : 왜 죽음을 묻는가? (초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누가 어렵게 살아남으면
물론 기뻐할 일이다.
실제로 상당한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되살아난 생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영웅의 질문이다

_ 리처드 로어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