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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시작

치명적 실수

정말 피해야 하는 실수는 무엇일까?

by 삼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 악수를 청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잡고 먼 길을 떠나보자
판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깰 것이 있으면 깨고
뒤집을 것이 있으면 뒤잡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다

_ 나태주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중에서



詩足 : 시를 쓰고, 다시 쓰고, 또 쓰고, 고쳐 쓴 과정을 기록해두다.

시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둔 질문


아침에 시를 읽고 나누는 온라인 단톡방 ‘#시담쓰담’에 나태주 시인의 글을 올려두었다. 풀꽃 시인의 글은 내게 늘 질문을 품게 한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를 주제로 간단한 시 창작 놀이를 시작해보았다.


다 부질없다고 투덜거리는 시 (초고)


처음 쓴 시는 ‘다시 : 다 부질없다고 투덜거리는 시’ 그다지 마음에 든 시는 아니었다. 뭔가 반복적으로 하라는 어른들의 조언에 삐뚤어진 마음이 올라왔나 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가 늘 뭔가 다시 해 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편할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왜 다시 하라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은데, 그냥 반복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 같을 때 울컥 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담아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불평불만 가득한 중2병 같은 시가 되었다.


다시 주어진 기회 (초고)

이여서 ‘다시 주어진 기회’라는 한 줄을 쓰고 끄적여보았다. ‘다시’라는 말에는 반복되는 것의 짜증 남도 담을 수 있지만, 어쩌면 그게 기회로 느껴질 수 있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밝은 가능성에 집중하는 시를 써보려 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꼰대 같은 조언질이 되어버린다. 시가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더라. ‘다다다 시시시’로 문장을 시작해보는 장난질 정도만 남았다.


여기까지 쓰고, 시 쓰기를 중단했다. 해야 할 일이 몇 가지가 있었다. 시만 쓰고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일은 해야지. 아무튼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서, 나태주 시인의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를 뒤적여봤다. 오전 키워드였던 ‘다시’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를 찾아봤다.

허둥대는 마음 _ 나태주

<허둥대는 마음>이라는 시를 찾았다. ‘네가 와 있는 시간 잠시 / 마음이 편안해지다가 / 다시 허둥대기 시작해’라는 문장과 ‘아니 언제쯤 다시 / 만날 수 있을 건데?’라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풀꽃 시인은 설레는 그대의 방문에 또 허둥대고, 다시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나는 언제 이런 문장을 펼쳐낼 수 있을까 잠시 괴로워했다.


아무튼 한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재밌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시 ‘다시’는 그냥 투덜거림 같은 거라, 한 사람의 이야기만 담은 듯하다. 새 번째 시도에는 ‘다시’에다가 ‘새로움’을 더해보고 싶었다.

다시, 그리고 새롭게?


세 번째 시도에 담을 새로움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봤다. 뭔가를 다시 하게 된 근원적인 배경엔 뭐가 있을까? 다시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뭘까?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궁리하다 보니 떠오른 단어는 ‘실수’였다. 그렇다. 저 위의 상사가 그냥 다시 하란 것이 아니라, 뭔가 나도 '실수' 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리고 ‘다시’ 해보고 싶은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을 사람. 그래서 다시 주어진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심정을 담아보고 싶었다.


더불어서 또 다른 새로움은 한 사람의 심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도 담아보고 싶었다. ‘실수’는 혼자 한 것이 아니리라. 그래서 그 실수한 친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친구를 화자로 등장시켜 보고 싶었다. 둘 다 실수를 했고, 더 치명적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번에도 꼰대 같은 글이 되긴 했다.


연작시의 제목으로는 치명적 실수 2는 실수한 친구 입장을. 그가 실수하고 포기하도록 내버려 둔 친구의 잘못이 더 큰 실수라 여겨서 치명적 실수 1이라고 제목을 다시 붙였다.

치명적 실수 (초고)

오늘은 전처럼 끄적인 시를 먼저 보여주고 시족을 뒤에 남기지 않고 순서를 바꿨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시인박씨의 내면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시담쓰담’에 찾아온 친구들과도 나누고 싶었나 보다. ‘혼자 보단 함께….’라는 말이 요즘 내게 주는 울림이 있다. 코로나로 물든 2020년 봄이라서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아니 사실 늘 사람이 그립다. 그리움 없다면, 시를 쓰고 여기다 올리는 짓 따윈 하지 않겠지. 시인은 그리움을 품은 나약한 인간이다.


초고를 조금 다듬어 네 편의 시를 뒤에 남겨두었다. 지나가다 이 글을 열어본 벗들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좋겠다.


2020년 5월 12일

질문술사 시인박씨

https://open.kakao.com/o/gLNs0hbc



[첫 번째 쓴 시]

다시


힘겹게 버티며

겨우 마무리한 일을

다시 또 하란다


너무 어렵고 힘든 일

괴로워 포기하고 싶은데

다시 해 보란다


여태 문제없이

진행해 온 일들도

처음부터 또

다시 검토해보란다


다 집어치우고 떠나고 싶어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 일상은 늘

다시 또다시의 연속


부질없다고 투덜거리는



[두 번째 쓴 시]


다시 또 새롭게


주어진 기회

이번엔 똑같이 할 순 없어


르게 생각해보고

른 사람 만나 조언구하고

양한 가능성 살펴보면서


한 편 끄적여두니

도해 보고 싶은 실험들과

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 떠오른다





[세 번째 쓴 시]


치명적 실수
2


덤벙덤벙 들뜬 마음

서두르다 망쳐진 일


반복되는 실수 따라

후회되고 위축된 맘


또 실수할까 두려워

뒤로 한 발 물러선다


뒷수습도 못할 바엔

시도조차 그만둔다


실수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치명적 실수2



치명적 실수
1


덤벙덤벙 멋진 친구

누구보다 뜨겁다네


실수하곤 미안해서

타인부터 살피던 그


다시 한번 더 해보자

이번에는 함께 하자


실수해도 또 해봐야

배우고 또 성장하지


혼자서만 하지 말고

물어보며 같이하자


실수한 친구가 혼자 감당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야 말로 더 큰 치명적 실수 1



버나드 쇼의 문장은 번역하기 귀찮.... 실수에서는 배우는 사람 되고 싶으나, 치명적 실수는 가급적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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