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미안하고 아프다
'여전히 마음은 소년과 같은데 어느덧 노년의 세월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이 이 시기에 접어든다. 이렇게 갑자기 늙어버릴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_ 세네카의 [인생론] 중에서
덜 자란 어른
어른이 되어가는 딸과 말싸움하다가
도덕군자인 양 잔소리 길게 늘어놓는다
덩치만 큰 아빠에게 딸이 반격한다
‘그래서 아빠는 내 마음 알아?’
죄책감 건드리는 당찬 딸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버린 어리디 어린 아빠
목소리에 화를 눌러 담아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너는 아빠 말 듣긴 했니?’
덜 자란 어른 정처 없이 밖으로 나와 걷다가
성난 마음 뒤에 스민 슬픔을 마주한다
죄책감, 후회, 미안함 켜켜이 쌓아온
그 어리디 어린 미숙한 마음 다시 보며
다 큰 어른이 울먹이며 눈물 삼킨다
어른인 척 가면 쓰고 살긴 어렵다
2020. 5. 24
질문술사 시인박씨
詩足 : 제가 진짜 어른인가 돌아보면 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은 저의 모순됨과 가식(假飾), 부족함을 일깨웁니다. 매번 부끄러움을 느껴도 저라는 인간이 쉬이 변하지 못하는 게 비극이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으며 제 삶의 기록을 쌓아갑니다. 어쩌면 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른다운 어른의 벗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지낸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벗이 되기에도 한참 부족한 인간임에도 받아주는 이들에게 고맙고, 덩치만 크고 속은 어리디 어린 - 덜 자란 아빠를,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라고 불러주는 두 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