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술사 시인박씨와 가깝거나 먼 친구들에 띄우는 세 번째 편지입니다.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벗에 대하여
삼봄을 사랑하는 벗들에게
벗들과 멀어진 후 고독을 벗 삼아 세 번째 편지를 씁니다. 제 깨어짐의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셨던 ‘얼리+벗’ 여러분들에게 11일 차 만남에서 ‘스승’에 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새해에 배움이 필요한 순간, 누구를 스승 삼아 조언과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지를 물었지요. 그리고 질문노트 21개의 빈칸 중 첫 번째 빈칸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적어두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11번째 질문에 대한 설명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저는 잠적했고, 새해를 맞이하는 21개의 질문 수업이 진행되던 질문예술학교는 갑작스럽게 반장 역할을 하던 삼봄의 부재로 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회복하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드렸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을 제 자신을 돌보고 있고, 또 돌보며 지내야 할 듯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남기며, 그리운 벗들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갑작스럽게 고백을 하자면, 제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관계를 제대로 맺어오지 못했던 벗이 한 명 있습니다. 아침놀을 사랑하는 ‘깨깨님’이시지요. 깨깨님과 함께 하던 시절엔 부족한 제가 사자같이 날뛰던 시절이라, 아마도 깨깨님의 벗이 될 자격을 얻지 못했나 봅니다. 오늘 깨깨님이 삼봄의 부재를 틈타 질문 하나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2020년, 당신을 지탱해준 세 가지는?”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벗이 선물해주는 좋은 질문은 삼봄을 기쁘게 합니다. 2020년 11월 11일 마침내 무너져 버린 저는 더 이상 예전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어, 삼봄이라는 새 이름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럼 저를 무너뜨리고, 깨어지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은 그 질문에 머물러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칩거 중인 저는, 저를 돌보며 틈틈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제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기에 좋은 친구의 글이 필요했습니다. 니체는 정말 좋은 친구이자, 위험한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제자라고 자신을 추앙하며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했고, 저 역시 저를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곤 했습니다.
삼봄에게는 조금 일찍 세워둔 인생 목적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냥 영화 300이 인상 깊어서 즉흥적으로 만든 목적입니다. ‘친구 300명.’ 네 이 간단한 것이 제 삶의 목적이고, 죽을 때까지 이루고 싶은 삼봄의 삶의 목적입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떠들고 다녀서 이미 알고 있는 벗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좋은 친구 300명을 다 만나려면, 죽기까지 꽤 오래 살아야 할 듯합니다. 삼봄이라는 새 이름을 다시 얻었으니, 이제부터 삼봄의 친구 300명을 처음부터 다시 정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위험한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갖춘 300명을 찾아낼 것이고, 기다릴 것이며, 다가설 것입니다.
다시 오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저를 무너뜨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봅니다. 20년 이상 견고하게 쌓아온 ‘나’라고 하는 정체성을 깨버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저를 더없이 취약한 어린아이 상태로 되돌려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미 눈치 채신 벗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벗과 만남’이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나를 버릴 수밖에 없도록 저를 내몰았습니다. 코로나 19 따위가 아니고요. 벗이 아닌 그 누구도 저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오만한 자아를 갖고 있던 저랍니다. 그러니 40년 넘게 살아온 삶에서 무엇도 저를 제대로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그 대단한 일을 친구가 해 냈습니다. 아주 위험한 친구를 만나서 결국 저는 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기다려주는 벗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시 돌아온다면, 저 역시 꽤나 위험한 벗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벗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물은 벗에게 주어야지요. 벗이 아닌 이에게 주는 것은 뇌물일 뿐입니다. 제 질문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벗, 제 시를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벗, 그 벗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제게도 기쁨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벗을 만나기 위해, 저는 지금 동굴로 들어와 스스로를 벗들로부터 유폐시키고 있습니다. 기존에 했던 모든 약속을 뒤로하고, 그렇게 나쁜 벗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벗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할 친구를 창조한다. 선물은 군주도, 노예도, 거지도 만들지 않으며 오직 친구를 만든다. 그것이 위대한 사랑을 창조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니체는 위험한 친구입니다. ‘신의 죽음’ 따위를 선물이라고 가져오는 친구잖아요. 저는 그런 위험한 선물을 준비하는 게 아닙니다. ‘봄봄봄’이라는 따뜻한 선물을 가져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선물을 주는 친구라는 의미에서 제 이름은 ‘삼봄’입니다. 봄을 품지 못한 자에게 다가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봄을 품고 있지만 겨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서서, 삼봄의 위험한 선물을 건네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를 무너뜨린 친구의 만남처럼, 앞으로 삼봄을 만나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린 조금 더 멀어져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벗을 만나고 싶은 것이지, 벗에게 ‘선물’을 강권하고 싶은 것은 아니거든요. 벗들도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며칠 전 태어난 제가 좀 더 자라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태어나 빛 속을 걷기엔 제 몸에 어둠이 너무 많이 묻어 있습니다.
저는 본디 벗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을 코칭할 때만 기뻐하는 편협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예처럼 살아가는,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 삼아 살아가는 낙타들을 코칭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자기 비즈니스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회사에서 선발된 사람을 돈벌이가 된다고 코칭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월급에 묶여있는 낙타를 더 유능한 노예가 되거나, 더 쓸모있는 도구가 되도록 만드는 코칭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비굴한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은, 저의 가난함을 들여다보게 하기에 마주하기 힘들어서였습니다. 물론 사자처럼 다른 동물들을 부하 삼는 이들도 코칭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면서,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을 노예처럼, 도구처럼 부리는 사람과 어찌 친구를 하겠습니까? 사실 그들은 코치인 저 또한 도구로 여기기에, 노예 취급을 받는 걸 견디지 못하는 제가 돈 몇 푼에 영혼을 팔 순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런 저 또한 지난 20년 동안 낙타처럼 사자처럼 살아왔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그걸 깨달았습니다. 저도 낙타처럼, 사자처럼 살고 있음을. 이런 제가 어찌 친구로 만나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 밑바닥에 내려와 제 부끄러움을 마주했고, 제 못남을 받아들이고 있고, 진짜 내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들을 찾아서 버리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저를 스승이라 부르면 본능적으로 경계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그리 존경할 만한 자가 아니라는 것도 꿰뚫어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리석은 자입니다. 제가 그 어리석음에 물들까 두려워 도망치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바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머리 중심형 인간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많은 지식을 탐하고, 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그 뒤에 숨어서 말하는 거짓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참고도서를 쌓아두고 글을 쓰는 비겁한 인간이 저였습니다. 약속했던 세 번째 책을 쓰지 못한 건, 아마 그런 비겁한 짓을 계속하고 싶지 않은 오만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양심이 있었나 봅니다. 앞으로 삼봄은 억지로 책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쓰다 보니 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책을 쓰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쓰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저를 그런 어리석음으로 이끄는 출판사가 있다면, 그런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편집자가 있다면 저는 기꺼이 다시 사자처럼 뒷걸음치며 으르렁거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려고 동굴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가 될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당신과 함께 놀만한 아이가 되는 과정 중에 머물고 있습니다. 동굴에서 나오면 꽤 위험하게 놀 수도 있고, 바보같이 놀 수도 있겠지요. 벗들과 놀만큼 회복한 뒤에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아직은 새로 태어난 저를 돌볼 시간입니다. 저를 돌보면서도 벗들에 대한 그리움 참지 못하고, 편지 하나 끄적이고 있는 친구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보내주는, 말없이 보내주고 있는 응원까지 듣고 있습니다.
300명의 위험한 벗들과 만나기 위해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삼봄이 조금 더 위험한 친구가 되어 돌아가겠다고, 언제 지킬 수 있을지 아직 모를 약속을 남겨 둡니다. 그때까지 저 빼고 잘 놀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2020. 11. 14. 저녁에
스스로를 먼저 돌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삼봄 드림
P.S. “2020년, 당신을 무너뜨린 세 가지는?”에 대한 다른 두 답은 없습니다. 이미 무너졌는데, 뭐가 또 저를 무너뜨렸겠습니까? 이 친구, 저 친구, 그 친구가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저를 만나 무너뜨린 존경하는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 다시 전합니다. 저를 무너뜨린 벗들에게도 작은 선물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