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봄詩 필사노트 20231018 &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_ 이문재 <오래된 기도>
아침에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문을 필사했다. 예전에 끄적여둔 <오늘 아침 기도>를 다시 꺼내 조금 수정해 다시 쓰고, 낭송도 해 본다. 중간에 목소리가 조금 튀어서 어색하나 수정 없이 그대로 남겨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애쓰는 날보다
오늘 우리가 살아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상상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그저 주어진 일들을 바쁘게 처리하는 날보다
우리가 행하는 이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 일에 우리의 진정성과 온전함을 담아본다면
어떻게 다르게 해 볼 수 있는지
질문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그저 이 악물고 버티며 견디는 날보다
아프면 아프다 하고 힘들면 힘들다 하며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미는 날 되게 하소서
_ 詩因 삼봄 <오늘 아침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