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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Oct 15. 2015

서툰 멘토들에게 드리는 질문들

피드백을 하기 전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나는가? 


  여러 종교의 신비주의자들 - 불교의 선승이나 이슬람교의 수피, 유태교의 랍비 등-은 사람들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내곤한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나는가?' 지금 우리는 이 문제의 정답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음파는 발생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음파를 지각하지 않는다면 단연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리는 지각되어야만 소리가 된다. 소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어쨌든 고대의 신비주의자들도 소리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 즉, 누근가가 듣지 않는다면 소리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는 실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하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소위 커뮤니케이터, 즉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무엇을 외친다고 하자.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듣는 사람이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없는 것이다. 단지 의미 없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지각하는 행위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제 1 원리이다. 

_ 피터드러커 [피터드러커의 미래경영], 제 6장,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p102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또다른 전문가를 육성하는 자리에 서 있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피드백을 제공해 줄 기회 혹은 책임이 맡겨집니다. 

  1년 반 이상 함께 학습조직을 촉진하는 퍼실리테이터 훈련과정을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 세션은 이제 막 훈련을 시작한 새내기 퍼실리테이터들의 첫 실습을 참관하고 피드백을 줄 선배 퍼실리테이터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과정 운영 담당자가 여러분에게 '멘토'라는 직함을 달아주었는데 모두 설레임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실 것 같네요.

  서울과 대구에서 진행된 이번 과정은 관찰과 피드백을 직접 수행해 보면서 익힐 수 있게 디자인 했습니다. 준비와 진행, 그리고 이후 성찰 과정에서 참가자보다 제 자신이 더 성장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과정이 끝나고, 우리가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 중 다시금 새겨볼 만한 질문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편의상 이 글에선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당신' 혹은 '우리'라고 칭하고, 피드백을 받는 사람을 '그'라고 칭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와 함께 학습조직 퍼실리테이션 심화과정에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쓴 글이지만, 타인의 성장을 조력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공유합니다. )




1. 조언을 주기 전에 그가 무엇을 경험하였는지 충분히 들어주었나요?

 


  자세한 안내를 제공하지 않고 진행한 첫 번째 관찰 시간에 우리는 모두 그의 활동을 관찰하고, '잘 했던 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을 끄적여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줄 시간이 되자 자신이 기록한 것을 전달하기에 바빴지요. 누구도 '해보니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으로 그가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점을 아쉬워하는지 충분히 들어 준 후 피드백을 주지 못했습니다.


A : 잘하신 것은.........
B : 해보시니 어떠셨어요?

  그가 실습 후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아쉬움을 떠나보내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 속에는 당신의 피드백을 받아들일 자리가 마련되지 못합니다.


  좋은 대화의 시작은 좋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이란 상대방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질문이겠지요. 그의 경험을 들어주고,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 했다고 느끼는 점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야기 하도록 해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물어봅시다. 당신이 끄적여둔 메모는 그 다음에 쳐다보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메모는 필요가 없어졌을지도 모르지요.  




2.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 하기 전에,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어보셨나요?

 

우리가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보여준 말과 행동 뿐입니다. 행동을 중심으로 관찰하고 피드백을 준다면, 아무리 섬세하게 접근하더라도 그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A : 진행하실 때, ~~ 했는데, 제가 보기엔 불필요한 행동이였습니다.  
B : 진행하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어떤 경험을 주려고 했나요?

  그가 의도한 바를 이해하여야, 그가 경험하고 있을 현재의 감정, 만족이나 아쉬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조언을 하지 않고, 그의 의도가 꽃 피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안내할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관찰은 그의 실습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그의 경험과 생각에 대한 질문을 멈추는 순간, 더 이상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3. 당신의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하기 전, 그가 스스로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 볼 기회를 주셨나요?

 

  고민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 행할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민 역시 그가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질문하고, 그의 고민 과정을 함께 해 주세요. 그가 막혀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때 당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주어도 늦지 않습니다.

A : OO이 잘 안될 땐, 이렇게 해 보세요......
B : OO이 잘 안되어 아쉽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까요?

  앞 단계어서 무엇이 아쉬웠는지, 자신이 한 행동과 그 행동으로 일어난 영향,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는 다시 더 좋은 방법론을 탐색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가 길을 찾기 전에 당신이 길을 제시한다면, 당신이 아는 길보다 더 좋은 길을 함께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겠지만, 스스로 찾아낸 방법에 대한 실행률이 남이 해준 조언에 따르는 실행율보다 높습니다. 실제로 앞으로 실행을 계속해 나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럼 그에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4. 결과 보다는 과정을, 과정보다는 사람을 위한 피드백을 제공 하고 있나요?

 

우리가 피드백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가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작은 실수들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함께 탐색하고, 앞으로도 타인들의 성장에 공헌하기 위해, 학습조직과 조직의 회의를 촉진적으로 이끌어 보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함입니다. 

Product : 당신의 피드백은 결과를 향하고 있습니까?

  '잘했다/못했다'는 결과를 가지고 피드백을 줄 수 있습니다. 15가지 체크리스트 항목에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겨 그의 점수가 몇 점인지, 잘한 것과 못한 것의 항목을 세세히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피드백은 결과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것 보다 결과를 직시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은, 충분히 필요한 피드백입니다.

Process :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과정(Process)은 무엇인지, 전에 진행한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과정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고 피드백을 준다면, 그는 더욱 효과적인 촉진자가 될 수 있겠지요.

 Person : 아니면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만약 당신이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가지고 있는 자질 중 무엇이 퍼실리테이터로서 강점인지, 그리고 그가 가진 마인드와 철학, 태도가 더 좋은 촉진자가 되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당신이 그에게 어떤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해 주신다면, 그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번 실습은 첫 번째 시도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더 좋은 과정과 절차를 안내해 줄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첫 배움을 통해 발견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드백을 통해 그가 이런 이유를 찾는 과정을 더 잘 도울 수 있습니다.




5. 우리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자격은 무엇으로부터 나올까요?

 

전문가란 아주 좁은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실수를 저질러 본 사람이다.
닐스 보어 (덴마크의 물리학자)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경험을 하면서 수많은 실수를  했다는 이유는 그들에게 피드백을 줄 자격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실수를 성찰하며 얻은 자격은 '같은 실수를 한 이들의 경험을 따뜻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수해 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해 보면서 아픈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의 성공과 실망, 아쉬움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물론 그가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경청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겠지요. 

  당신이 피드백을 줄 자격은 회사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허락을 기반으로 합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피드백을 받을 그가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피드백을 줄 기회조차 갖지 못합니다. 우리의 피드백은 그의 용기있는 담대한 실행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의 행동이 없다면 당신의 피드백은 존재할 수 없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며 토론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겠지요. 피드백을 주면서,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피드백을 받고 있는 그이며, 그의 도전은 충분히 축하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6. 같은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평가해 보셨나요? 먼저 자신을 점검해 보았나요?


  우리가 퍼실리테이터 역량으로 15가지나 되는 항목들을 검토하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해 보았습니다. 모든 조언들은 자기자신에게 먼저 같은 잣대를 적용해 보길 권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잘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피드백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강약점을 확인한다면, 그의 강약점에도 보다 진솔하게 반응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피드백을 하면서 가장 도움을 받는 사람은 어쩌면, 피드백을 주는 당신일지 모릅니다.  




7. 피드백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를 위한 것도, 당신 자신을 위한 것도 올바른 답이 아닙니다. 피드백을 주는 이와 받는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관계, 즉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지역에 함께 학습하는 조직에 또 다른 퍼실리테이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 기대어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피드백입니다. 그렇지만 첫 번째 피드백 만큼은 '우리'보다는  피드백을 받는 '그'가 이번 활동의 주인공입니다. 왼손은 거들 뿐입니다. 당신과 저는 왼손입니다. 




8.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피드백을 주고 있지 않나요?

 

  우선 저부터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주려는 마음에 결국 받아들이는 이의 수용 역량을 넘겼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더라도 기억에 남아 행동이 달라지고, 통찰(인사이트)을 얻어가는 것은 하나에서 셋을 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전할 메시지는 간결하게 다시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첫 걸음을 내딛은 초보 퍼실리테이터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제 메시지는 늘 그렇듯 질문으로 준비했습니다. 




9. 개인적 경험을 들어주고 함께 머물러 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선물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피드백이다.



다음 달 모임에서는 여러분의 실제 피드백 경험을 경청하고 싶습니다. 

함께 해 주시고,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 10. 15

대구에서 훈련과정을 끝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질문디자인연구소 

박영준 소장 드림 


# 덧붙이는 글 

- 질문술사 박영준 코치는 변혁적 리더들을 코칭하고, 학습과 성장,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퍼실리테이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하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하는 일의 본질이 질문에 있음을 발견하고, 함께 탐구할 더 좋은 질문을 디자인하고 나누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 브런치 매거진 [박코치의 질문노트]는 박코치의 질문노트입니다.  코칭과 퍼실리테이션, 그리고 공부하며 기록 한 질문 중 함께 공유하고 싶은 질문들을 나누는 장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 같이 연재하고 있는 [다르게 질문하라]는 머리-가슴-손발을 연결하는 통합적 질문하기를 안내하기 위해 쓰고 있는 글입니다. 그에 비해 [박코치의 질문노트]는 실제 제 개인적인 경험과 노트에 끄적인 질문 중에서 생각나는대로 끄적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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