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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Jan 07. 2020

마크 테토.interview

한옥에서의 진짜 한국살이

“서울도 물론 뉴욕처럼 대로가 많지만, 진짜 서울의 삶은 이름조차 없는 작고 수많은 골목에서 매일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논쟁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며 존재한다.” 뉴욕 출신의 어느 기업가가 서울에 관해 쓴 글은 인터넷을 타고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그는 한옥에서 살며, 진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리고 있다. 마크 테토가 사는 한옥 평행재에서 그를 만났다.


ⓒ Studio Kenn


한옥에 빠지다


마크 테토는 한국에서는 ‘비정상회담’ 등의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지금이야 한옥에 사는 외국인이자 한국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깊은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서 일하던 그는 2010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 되어 한국에 왔는데, 당시만 해도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바쁜 일상에 쫓기듯이 출퇴근하며 지냈다. 그랬던 그가 친구를 따라 방문한 북촌 한옥마을에서 눈이 번쩍 뜨게 됐다. 고즈넉한 한옥이 늘어선 골목 어귀를 서성이던 그에게 한 한옥이 때마침 내부가 비워진 채로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한 것이다. 친구의 지인이었던 집 주인과도 마주쳐 한참 얘길 나눴다. 그길로 그는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그 한옥으로 이사했다. 2015년의 여름, 그가 한국에 온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빈집의 느낌이 참 좋았어요. 문을 열자마자 코로 밀려드는 집의 냄새도 좋았고, 창밖의 대나무 소리도 좋았어요. 친구가 그러더군요. 어떤 한옥을 정말 방문했다고 말하려면 사계절마다 찾아와봐야 한다고요. 정말 계절마다 느낌이 다 다르더군요. 한겨울에는 기와가 눈으로 하얗게 덮이고, 여름엔 바닥의 한지 장판지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요. 봄과 가을엔 직접 가꾼 정원이 반짝이고요. 계절의 흐름이 안에 사는 사람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게 한옥이에요. 한 번에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 한옥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경치를 선보입니다. 한 채든 열 채든 규모에 상관없이 한옥은 겸손과 매력을 그 속에 품고 있어요.”


ⓒ Studio Kenn


여백을 채우다


이사 후,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그는 다시 강남의 가구거리로 향했다. 하루 만에 필요한 걸 다 사서 돌아오려 했지만 실상 새로운 한옥에 어울리는 가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별수 없이 오피스텔에서 옮겨온 소파만 거실에 놓은 채로 집들이를 하게 됐다. 마땅히 앉을 데도 없어 친구들에게 미안해하는 그에게 친구들에게서 들은 ‘여백의 미’라는 감탄이 그를 안심시켰다. 덕분에 그는 아주 느긋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집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오늘날 평행재는 집안 곳곳 그가 여기저기 다니며 수집하거나 직접 디자인한 가구/소품으로 마치 갤러리나 다름없는 멋스러움을 갖췄다.


“이 집에 어떤 가구가 어울릴까 생각한 건 태어나 처음이었어요. 전엔 가구는 가구고, 집은 집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했죠. 이 고민은 한옥이 준 큰 선물이었어요. 창틀의 문양을 따다 팔각형의 낮은 탁자와 그 밑에 깔 카펫을 디자인했고, 주방의 식탁과 의자도 공간에 잘 어울리도록 디자이너와 상의해가며 따로 만들었어요. 그 위에 아무 그릇이나 올릴 수가 없어 수제 그릇을 전문으로 만드는 작가에게 그릇을 맞췄어요. 그분들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결국 친구가 됐어요. 가구며 그릇이며 물건에 특별한 애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집안 곳곳에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지요.”


ⓒ Studio Kenn


경계를 넓히다


창문 너머로 옆집의 지붕을 보던 마크의 눈에 기와의 곡선이 부드럽게 차올랐다. 책을 사다 공부하고, 서로 다른 문양의 기와 수집에 그는 흠뻑 빠져들었다. 지금은 거의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여전히 그의 책상에는 오래된 기왓조각 몇 점이 놓여 있다. 2018년에 동료 기업인들과 함께 사비를 털어 해외로 나간 한국의 문화재를 되찾아온 일화는 제법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고미술품을 수집했던 이치다 지로(市田次郞)가 약 30년 전 일본으로 가져간 ‘고려 불감’과 ‘관음보살상’을 사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경복궁 명예수문장으로 임명되었고, 서울시 명예시민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모든 일을 두고 그는 이 집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은 덕분이라 소박하게 요약했다. ‘여러 사람의 인생이 평행으로 이어진 집’이라는 뜻을 담은 평행재에서 정말 그는 집의 이름처럼 살고 있었다. 회사를 걸어서 출근하는 그는 북촌의 골목길에서 이웃들과 인사하고, 큰길의 카페 사장님과도 익숙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삼청동과 경복궁을 지나 광화문 광장에 이르기까지 30분 남짓의 시간은 집 한 채를 넘어 마을과 도시에까지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강남에서는 엘리베이터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퇴근이었어요. 여기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동네를 거쳐야 해요. 그 길이 참 마음 따뜻하고 좋아요. 물론 강남에서 살 때도 한국을 좋아했던 건 맞아요. 삼겹살도 소주도 여전히 좋아해요. 하지만 수많은 창문의 잠금장치를 일일이 손으로 돌려 잠그고, 집안 곳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내도록 만드는 이 집은 바쁜 와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정리된 마음으로 살도록 저를 다독여요.”


인터뷰이는 ‘여백의 미’ 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여백의 미는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것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오브젝트 위주의 용어이고, 한국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란 비어있는 공간 자체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의미에서 온 것입니다. 영어로는 “Beauty of empty space.” 혹은 “Nothing is something.” 정도입니다. “Less is more.” 보다 더욱 깊이가 있습니다.




[월간 KOREA 2020-01 Interview] 사진 STUDIO KENN 글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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