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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Jul 11. 2019

심야버스 운전기사 윤명석.interview

깊은 밤, 도시를 달리다

자정이 지나서야 시동을 걸고 손님을 태우러 나가는 버스가 있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이른바 올빼미 버스는 ‘Night’의 N으로 시작하는 전광판을 달고 심야의 도시를 달린다. 그 노선은 이제 9개로 늘었고, 새벽에 택시 대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늘고 있다. 올해로 버스 운전경력 40년째를 맞은 윤명석 씨가 운전하는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의 밤길을 구경해봤다.


일반버스가 운행을 멈추면 이제 도로는 심야버스의 것이 된다. ⓒ Studio Kenn


밤에 운전하기란,


한 마디로 여유롭게 운전하는 맛이 있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서울은 교통 체증이 매우 심하다. 낮에 운행하는 버스는 특히 배차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해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심야버스는 일반버스마저 끊기는 깊은 밤에 운행하기 때문에 보다 마음이 여유롭다. 같은 코스를 매일 다니기 때문에 신호가 바뀌는 타이밍도 다 알고 있고,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시간까지 넉넉히 배분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하고 있다.


운전이 업이 된 것은,


78년도에 대형운전면허를 따고 상경해 79년에 현재 회사인 양천운수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3년만 하고 그만둬야지 했는데 벌써 40년이나 됐다. 참으로 한 세월을 이 회사에 쏟았다. 특별한 이유랄 것 없이 이렇게 시간이 간 걸 보면, 운전이 운명과도 같이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직장에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1남2녀 자녀들도 다 키워냈고, 정년을 맞아 은퇴한 후에 다시 심야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는 걸 보면 운명이 아니고서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 같다.


ⓒ Studio Kenn


40년의 버스운전 세월을 돌아보니,


88올림픽 이전에는 버스에 요금을 받고 승객을 맞이하는 안내원이 있었다. 승객이 직접 운임을 버스의 돈통에 넣도록 바뀌었고, 현금 대용으로 토큰이나 종이로 된 승차권을 쓰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현금을 쓰기는 하지만 다른 버스나 지하철과 환승을 위해 카드를 쓰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정차역 안내도 이제는 완전히 자동으로 바뀌어서 운전하는 동안 신경쓰지 않아도 저절로 안내 방송이 나가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내에 승객이 많아 혼잡한지 아니면 여유로운지까지 표시가 되는 걸 보면 운전기사와 승객을 빼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올빼미버스에 특별한 일이랄 게,


미담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다친 사람을 구한다거나 강도를 잡는다거나 하는 그런 큰 사건이 없는 편이 우리 운전기사들에게는 좋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자면, 평일마다 새벽 3시에 버스에 타는 할머님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타실 때마다 사탕을 주시는데 정이 느껴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항상 좋은 사람만 타는 건 또 아니다. 심야이다 보니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타기도 하는데, 신기한 건 그런 손님이 탈 때에는 해결해줄 수 있는 이도 같이 버스에 있다는 점이다. 버스기사로서 직접 제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경찰에 대신 신고도 해주고 버스 운행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서울뚜벅이였던 내게 새벽 2시고 4시고 늦게까지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진짜 어마어마하게 멋진 일이었다. ⓒ Studio Kenn


N16번 버스노선 중에,


3년째 같은 노선을 운전하고 있는데, 동대문 쪽은 무척 활기가 넘친다. 예전엔 밤이라 하면 자는 걸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다양해진 것 같다. 의류 도매시장이 심야에 열리는 동대문에서는 옷을 잔뜩 짊어지고 타는 사람도 있고,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탄다. 한국인들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새벽에 일하고 쇼핑하고 계속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낮에 볼거리가 많은 광화문 쪽은 오히려 심야에는 썰렁하다.


제일 소중한 것은,


단연코 건강이 최우선이다.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해야 일도 계속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가 건강해야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걷고 운동하면서 체중을 많이 뺐다. 목이나 허리가 아픈 게 버스운전사들의 직업병과도 같은데, 지금은 상당히 좋아졌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운전을 할 것이고, 또 운전을 계속 하기 위해서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할 것이다. 육체의 건강만큼이나 정신의 건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기사가 손님들이 있는데 욕을 할 수도 없으니, 숨을 힘껏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 Studio Kenn


‘밤’이란,


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깨어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전에는 그저 잠자는 시간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움직이고 어쩌면 낮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버스 운전으로 따지면 낮에 자유롭지 못했던 부분이 밤에 오히려 더 자유롭기도 하고, 37년간 낮에 운전했던 내가 은퇴 후에 다시 심야버스기사로 운전대를 잡은 걸 보면, 밤은 ‘인생의 2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님들도 나도 인생의 새로운 이야기를 심야에 쓰고 있다.


타고 내리는 이들은,


밤 늦게 깨어있는 이들은 누구라고 딱 한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학생들도 있고,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직장인, 새벽에 일하는 근로자, 대리운전기사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에게도 밤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정류장도 버스도 거쳐 지나가는 중간지점일텐데, 나는 그들의 발이 되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또 타고 있는 동안에는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Studio Kenn


심야의 서울 여행은,


내가 운전하는 노선은 서울역 환승센터도 지나가는데, 여행객들이 많이 탄다. 어떤 이들은 버스 행선지를 물을 때 호텔명을 말하기도 하는데, 호텔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 명으로 물어보면 더 정확하게 대답해줄 수 있으니 참고해주면 좋겠다. 요즘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늘어났기 때문에, 여행객인지 아니면 일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큰 캐리어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심야버스는 저상이라 짐을 싣기도 비교적 편하고 또 밤 늦게도 탈 수 있으니까 관광객들에게는 특히 좋은 교통수단이 되리라 생각한다. 누구든 외국에 나가서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깊은 밤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아보는 재미를 느껴본다면 어떨까.




[월간 KOREA 2018-11 Neighbor 심야버스운전기사] 사진 STUDIO KENN 글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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