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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Jul 08. 2019

자동차 디자이너 이상엽.interview

현대자동차의 변신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로 유명세를 얻은 쉐보레 카마로, 우아한 멋을 자랑하는 벤틀리 플라잉스퍼와 새로운 정체성의 콘티넨탈 GT, 미국 모터트렌드 '2019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등 세계의 극찬을 받은 제네시스 G70, 말 그대로 수많은 명차가 이상엽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서울모터쇼에서 그가 디자인한 차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Studio Kenn


스타 디자이너의 탄생


자동차 디자이너 이상엽의 이력은 매우 다채롭다. 피닌파리나 인턴을 시작으로, 수많은 국가에서 각 국가를 대표한다는 브랜드의 주력 자동차를 디자인해왔다. 연간 900만 대를 생산하는 미국 GM이나 독일 폭스바겐에서는 대량생산 체제를 익혔고, 연간 9000대를 맞춤제작하는 벤틀리 등에서는 소위 ‘익스클루시브 비즈니스’로 불리우는 초럭셔리 라인까지 두루 경험했다. 


이상엽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2006년 영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였다. 셰보레의 카마로는 그가 컨셉부터 2008년 양산까지 외장 디자인을 직접 디자인했다. 1960년대 후반의 1세대 카마로를 21세기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 차를 자신의 디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훌륭한 멘토였던 디자이너 톰 피터스(Tom Peters)와 한 팀으로 호흡하면서 카마로와 콜벳을 함께 디자인했습니다. 물론 역할상 제가 주로 리드 했지만, 가장 미국적인 차를 가장 잘 아는 팀원들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차를 만들었던 기회는 그 결과물보다 소중합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인 동시에 스스로를 세일즈맨이라 소개한다.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렇다. © Lee SangYup

허기와 도전으로 무장하다


어느 나라에서든 현지인으로 살았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속 어디서나 그의 이름은 ‘이상엽’이었고 그것이 그가 한국인으로 내세운 정체성 하나였다. “유학 시절 그림은 남들보다 잘 그렸을지 몰라도 자동차 문화에 관해서는 한마디로 무식했죠. 잃을 것이 없다는 자세로 모든 일을 바닥부터 배우듯 임하는 저를 예쁘게 봐준 멘토가 고맙게도 늘 있었어요. 다국적 멘토들의 악센트나 농담마저도 따라 하고 옷차림까지 흉내 내며 모든 걸 흡수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 캐릭터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더군요. 이제는 제가 존경하는 선배 디자이너들에게는 없는 또 다른 역량을 제가 지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가 한국을 떠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셋이었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열등감 자체가 그에게 좋은 디자인을 갈망하는 동기가 됐다. “지금도 유럽에서 디자이너들 만나면 어렸을 적 아빠의 페라리를 보며 디자이너 꿈을 키웠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요. 우리 아버지는 소형차 한대도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한국에도 그런 드림카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어요.


디자이너의 손 끝이 어떻게 자동차의 디자인을 바꾸는지는 오늘날 현대자동차 디자인으로 그가 보여주고 있다. © Lee SangYup

한국을 담은 자동차를 디자인하다


이상엽이 2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부터 현대의 대중형 양산 차량까지 폭 넓게 담당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임기 3년차를 돌아보면 펠리세이드와 G70 그리고 소나타를 연달아 성공적으로 발표하며, 하나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진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훌륭한 디자인은, 모터쇼에 나와서 번쩍번쩍한 예쁜 차에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풍경과 5~10년 어우러지면서, 길거리나 골목에서 마주쳐도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이 명차입니다.”


그가 한국에서 디자인한 차들엔 말 그대로 한국이 녹아 있다. 그가 전담으로 디자인한 소나타는 대중을 위한 차로, 국민차로 불리울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차량 중에 하나였다. 이상엽을 통해 완전히 새로워진 소나타에서는 한국의 현대성을 엿볼 수 있다. “고급 브랜드나 대중 브랜드나 명성이 있는 브랜드에는 다 디자인의 뿌리가 있습니다. 제네시스와 소나타의 뿌리는 정확히 서울입니다. 서울에는 현대적인 도시와 오랜 전통이 공존하고, 넓은 광장과 좁은 골목이 붙어 있고,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묘하게 어울리는 대한민국의 캐릭터는 창의력의 원천이 됩니다. 디자이너에게는 참 고마운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네시스 라인업으로 현대의 브랜드 가치는 과연 얼만큼 상승했을까. © Lee SangYup

최고의 프로젝트와 최고의 팀


이상엽은 팀플레이어다. 그는 결코 혼자 일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이자 보스, 동료로 꼽는 루크 동커볼게(Luc Donckerwolke)와 한 공간에서 책상만 따로 두고 중간 테이블에서 함께 일한다. “디자인 이야기할 때는 누가 보스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격렬하게 논쟁하다가 정말 끝이 안 보이면 Donckerwolke가 결정을 하긴 하지만, 그렇게 치고 받는 순간이 제가 디자이너로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해지는 때 입니다. 디자인에 열정을 가진 최고의 파트너이자 존경하는 분과 함께 일하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한국의 현대디자인센터에는 400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 일본 등에도 저마다 디자인센터가 있다. 디자인 리더로서 이상엽은 디자이너 개인의 의견에 가까이 귀 기울인다. “한 국가 내의 고객 성향을 모른다면 제품을 디자인할 수 없습니다. 국가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대화법이 다르죠. 시장의 상황에 따라 자기의 비전도 변화시킬 수 있는 디자이너가 자기의 비전만 생각하는 이보다 더 환영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대에서 여러 국가의 차량을 디자인하면서, 각 국가마다 스위치를 켜고 끕니다. 미국 시장의 차를 디자인할 때, 인도 시장의 차를 디자인할 때, 각각 다르게 접근하는 거죠. 그리고 그 기본에는 개인들의 독특한 시각과 의견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Fast Mover, 다시 출발선으로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디자인을 시작하고 3년 후에 양산된다. 그 차는 3~10년 정도 시장에서 팔린다. 디자인 단계나 양산시에는 최첨단의 기술이 소비자가 구매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구형이 된다. 이상엽은 동료 디자이너들과 스스로에게 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앞서나갈 수 있는 디자인을 요구한다. “100년 역사를 지닌 브랜드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마주해,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섰습니다. 예전에 말을 타는 게 운송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승마가 스포츠인 것처럼, 자동차도 운전자의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진화했습니다.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는 디자이너가 필요합니다.”


그는 대화 내내 이번에 발표한 디자인과 아직 공개하지 않은 다음 작품들에 대한 자신감과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고객들이 저마다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잘 담아내는 디자인으로 계속해서 시장을 선도하고 싶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이죠.”
 

ⓒ Studio Kenn


Profile

2018.11 ~ 현대자동차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

2016.06 ~ 2018.10 현대자동차 스타일링담당, 상무

2012 벤틀리 외장/선행디자인 총괄실장

2010 폭스바겐 미국디자인센터 수석 디자이너

1999 GM 디자인 매니저




[월간 KOREA 2019-05 People 이상엽] 사진 STUDIO KENN 글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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