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갖고 그래.diary
인도에 주차하지 말라는 핀잔으로 시작된 첫 번째 이야기
by Sam Bright Jan 16. 2020
세상은 딱히 아름답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남녀가 만나 사랑해서 태어난 생명체들이지만, 그때의 온기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냥 살아있는 것이지.
우리 회사는 9시가 지나서 출근 태그를 찍으면 나중에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작년 말부터 얘기가 나왔으니, 이제 올해 1분기 결산에서 어떤 결과든 눈에 보이게 나올 것이었다. 작년엔 밤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고, 아침에 10분씩 늦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요즘엔 그래도 6시에 칼퇴하는 편이니 아침에 늦지 말아야지.
매일 아침에 몸부림을 친다. 출근하기가 싫거든. 일찍 눈을 떠도 10분만 더 누워 있고 싶어 하고, 그게 결국 9시에 아슬아슬하게 회사 앞에 차를 도착하게 만든다. 차를 어디다 대긴 대야 하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 회사 바로 앞엔 흰색선이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반절이나 주황선으로 바뀌어버렸다.
몇 달은 사이렌을 울리면서 주차단속을 하더니, 갑자기 조용히 돌며 딱지를 끊었다. 연달아 세 장의 고지서를 받으니 울화가 치밀었다. 전화해서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원칙상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 것이 맞다며 예전에 울렸던 건 계도기간이라 나름의 배려였다고.
세금이 부족하니까~ 이런 데만 돌면서 단속을 한다. 아파트 담벼락에 차를 대도 딱지를 끊는다. 노란선으로 바꾸면 다다. 조금 더 내려가면 수영장이 딸린 체육관이 있는데, 휴관인 월요일을 빼면 차가 항상 많다. 차 댈 대가 없어서 우리 회사 앞까지 사람들이 차를 대고 운동하러 간다. 내가 차를 댈 수 있는 곳은 빨리 걸어도 5분은 가야 하는 언덕 위 도로. 거기도 이제 또 다른 아파트가 완공되면 차를 못 대게 될 거다.
엊그제는 차댈 데를 못 찾고 회사를 지나쳐 체육관 가는 길목의 인도 위에 차를 올렸다. 내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어디나 차를 댄다. 차 댈 데가 없다는 건 그런 거다. 그래도 전에 차 빼 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 사람들 다닐 길은 만들어주고, 도로와 인도를 반씩 걸쳐서 댔다. 뛰어 들어오니 9시 정각이었다.
5일 연속으로 9시 정각에 출근에 성공했다. 4일은 흰색선에 대거나 체육관에 대거나 다른 사람들이 차를 빼길 기다렸다 회사 앞에 댔다. 5일 중에 하루를 인도에 올렸을 뿐이다. 야근하는 회사 사람들이랑 저녁을 먹는데 차를 왜 인도에 대냐는 소릴 들었다. 사람 다닐 길 터놓고 댔더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걸 누가 모르나. 차 댈 데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길 걸으면서 껌 종이도 안 버리는 나다. 그래도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주차는 전쟁이다. 자리만 비면 무조건 대야 한다. 체육관 근처는 그래도 주차단속을 잘 안 하거든. 법이라는 건 단단해도 사람은 아니다. 집행하는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문제인 거다. 법을 어기는 사람이 문제인 건 물론이고. 황색선에 대면 안 되고, 인도에 걸쳐 대면 안 되고, 뭐 하면 안 되는 건 참 많지.
출근길에 내가 지나는 공구상가 거리엔 차선 하나가 막혀 있다. 한 밤중에 엑스포 공원길을 지나갈 때마다 횡단보도 위에는 차들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어두컴컴해서 보이지도 않고 사고가 날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파트 옆처럼 주민들이 극성을 부리지 않는 체육관 옆, 먹고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그냥 길에 대는 트럭들, 근무시간이 끝나 단속할 사람이 없는 깊은 밤, 불법주차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단속이 나와서 딱지를 끊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쁜 놈이라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차를 적당히 눈치 봐서 댈 거다. 남들이 아홉 시에 늦건 말건, 나는 아홉 시까진 와야 한다. 늦잠을 자도 9시까진 맞춰야 한다.
차를 똑바로 대라는 사람들은 빈자리가 없어 언덕을 넘어 차를 대고 늦게 들어온 이들이었다. 무슨 심정인지 안다. 자기는 늦었는데 너는 왜 얌체처럼 차를 아무 데나 대고 정시에 출근하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떻게든 그럴 거니까.
회사엔 주차장이 없다. 건물을 지을 때는 주차장 선을 그려놓고, 지금은 선을 다 지우고 테이블을 놨다. 아파트가 또 완공되면, 진짜로 어디에도 차 댈 데가 없어질 거다. 오래된 중고차 몰고 다니는 나는 딱지도 끊고 벌금도 내야겠지만, 그게 정말 내 잘못인 걸까. 차 댈 곳이 없는 게 내 잘못인가.
위법은 위법이다. 개인이 떼쓴다고 법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남들이 아파트 사서 대출받고 또 아파트 사고 또 대출받고 또 아파트 산다고, 그게 재테크라고 할 때 왜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지 않았는가. 재벌 아들은 마약을 하고 성매매를 해도 집행유예가 나오는데, 돈 없는 마약쟁이는 몇 년을 산다. 성매매가 불법이라고 배웠지만 지역의 경찰관들은 단속 정보를 매번 업주들에게 흘려주고 돈을 받는다. 다들 똑똑하고 은밀하게 법을 비껴가는데, 나는 주차 똑바로 하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세상은 딱히 아름답지도 어쩌고 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그냥 되는대로 산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적어보련다. 누군 나한테 또 그러겠지, 그런데 주차는 똑바로 하시라고. 나는 그럴 거다, 너나 잘하세요.
#법을 #준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