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오랜 세월을 천천히 그러고 꾸준히 흘러 이제는 산 끝자락을 거의 다 파고들었다. 언제나 투명한 물이 찰랑이고 언덕에는 초록이 무성하다. 깊은 동굴 속엔 폭포가 흐르고 산 꼭대기엔 별이 쏟아진다.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평안이 여기, 영월에 있다.
커다란 돌산이 반으로 쭉 갈라져 꽤 볼만하다. ⓒ Studio Kenn
고씨굴에 숨겨진 절경을 만나다
안전모를 쓰고 입구에 다가가니 시원한 바람이 동굴 안에서부터 불어온다.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 탓인지 안에서 살고 싶을 정도의 상쾌함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는 이 굴은 4~5억 년 전에 만들어졌고, 고씨 성을 가진 가족들이 16세기에 전쟁을 피해 숨어들었다고 해서 고씨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좋다. 진짜 좋다. 글쓰는 사람의 표현력으로도 이정도면 충분하다. ⓒ Studio Kenn
총길이는 3.4km 중 일반인에게는 5분의 1 가량만 공개되어 있다. 수치상으로 600미터에 불과하지만 굴 내부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생각보다 많고, 고개를 숙이고 엉금엉금 기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구간도 있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바로 코 앞에서 기괴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을 구경할 수도 있고, 4개의 호수, 10개의 광장 등 풍부한 공간감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3개의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은 그 소리만으로도 온몸을 시원하게 한다.
동강사진박물관, 지역색이 살아있는 국제적 장소
영월의 자연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동강사진박물관이다. 사진에 관심 있는 이들이나 특히 사진학도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 Studio Kenn
이 박물관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지역주민들의 사진도 전시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국제사진제를 개최해 벌써 17년째 전 세계로부터 특색 있는 사진을 수집해오고 있으며, 계속해서 작품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동강국제사진제가 진행되는 동안, 박물관에서만 아니라 영월의 곳곳에서 사진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는 등, 지역민에게 열려있는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Studio Kenn
매년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사진 워크숍은 금방 참가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진가들과 함께 동행하여 영월의 역사와 관광, 휴양과 문화활동을 즐기거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교실, 사진제 수상 작가들을 직접 만나는 등의 특별한 시간을 갖고 있다.
별이 쏟아지는 별마로천문대
한밤의 별을 보기 위해 해발 800미터 높이의 산을 오를 수 있다면, 별마로천문대는 그 열정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깊은 밤의 천문대는 관람객들로 꾸준히 북적인다. 건물 밖까지 들리는 관람객들의 탄성만으로도 영월에서만 볼 수 있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도 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사진은 작가님이 찍은 거. ⓒ Studio Kenn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별은 매우 선명하고 밝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어딜 보아도 별이 빛난다. 그냥 맨 눈으로도 은하수의 별을 세어볼 수 있을 정도다.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셔터스피드 조절만 된다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 4층의 보조관측실에서 직접 하늘과 우주의 별을 관찰할 수 있다면, 지하 1층 천체투영실에서는 기상과는 관계없이 돔스크린을 통해 3,500개의 별을 감상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영월의 야경은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여기서 끝이면 섭섭하죠.
ⓒ Korea Tourism Organization
김삿갓 유적지,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으니, 채찍질을 멈추고 천천히 가네.” 조선 후기 방랑시인인 김삿갓이 남긴 시의 일부이다. 본명은 김병연이지만 그가 쓰고 다닌 삿갓(얼굴을 가릴 정도로 큰 모자) 때문에 김삿갓으로 더 유명하다. 어찌나 풍류를 좋아했는지, 그저 대나무 지팡이 하나와 삿갓만으로 조선 팔도를 유랑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전의 시라고 하면 정치적이거나 지나치게 고상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의 시는 서민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탈하고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다.
김삿갓유적지에서는 생애를 기리는 생전 주거지를 보존하고,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10월 초에 열리는 김삿갓축제에서는. 오래전 시인이 읊조렸던 구절들을 오늘날 문화행사로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떡 만들기, 풀로 만드는 공예, 판화 찍기, 대장간, 전통혼례, 민속놀이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청령포,
숲 속 기와집이 묘하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풍경에 반할 수밖에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영월의 명승 청령포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청령포는 마치 섬처럼 생겼다. 3면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뒤편은 절벽이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잠시나마 배를 타야만 한다.
ⓒ Studio Kenn
배에서 내려 자갈밭을 조금 걸으면 소나무가 하늘 높이 자란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소나무도 이 숲에 있다. 굵은 기둥의 소나무 사이로 야트막한 담과 기와집이 보이는데, 조선의 6대 왕이 왕좌에서 밀려나 유배되어 살았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숲과 한옥이 조화를 이룬다. ‘육지 속의 섬’에 숨겨진 조선의 역사와 자연을 조용히 즐길 수 있다.
ⓒ Korea Tourism Organization
연하계곡,
자연이 만든 휴식처
강과는 달리 계곡에는 좀 더 오밀조밀한 풍경이 있다. 초록빛으로 무성한 한여름의 활엽수가 그늘을 드리우고, 돌멩이에는 물기를 머금은 이끼가 반짝인다. 자연이 만든 천연 휴양지인 연하계곡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다. 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여름의 더위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계곡의 입구에서부터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내려오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계곡인데도 여러 개의 폭포가 연달아 나온다. 그중에서도 용소폭포는 용이 승천하면서 큰 바위 위를 발로 밟아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인데, 6미터나 되는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몇 군데에 간이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으며, 갑작스러운 비로 물이 불어나는 경우 재난경고방송시설을 운영하고 있어 보다 안전하게 물놀이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동강,
래프팅 명소
영월을 이야기할 때 동강을 빼놓을 수 없다. 강 주변으로 많은 수의 동굴이 형성되어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동식물도 상당수 서식하고 있어 자연미가 넘친다. 동강은 유속이 느리고 하천폭이 비교적 넓은 편이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탁 트이게 만든다.
ⓒ Yeongwol County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는 어라연도 이 강의 일부다. 에메랄드 빛의 투명한 강물 위로 커다란 바위섬이 우뚝 솟아있으며, 돌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이 빼어난 경치에 넋을 놓고 노를 젓기를 멈추는 곳이기도 하다. 동강의 총길이는 약 60km지만, 구간별로 특색 있는 경험을 선택할 수 있다. 올여름, 수많은 절경이 숨겨져 있는 동강을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