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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Feb 10. 2020

최첨단의 전통, 신경균 도예가.interview

신경균 도예가와 달항아리, 비정형의 아름다움

Shin Gyung Kyun


40년 넘도록 신경균 도예가는 새벽 두 시 반이면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 마치고 한잔 걸치는 것 외에는 취미랄 것도 일절 없다. 예전엔 가마 일을 돕는 이들이 많아서 지금보다 자주 불을 피웠지만, 요즘엔 가마에 불을 지피려면 넉 달은 꼬박 준비해야 한다. 일 년에 서너 번, 그와 그의 아들은 70시간 넘게 잠도 자지 않고 가마 앞에서 불을 지킨다. 선친의 방식대로 장작을 때는 가마와 발로 차는 물레로 아름다운 달항아리를 되살려낸 신경균 도예가를 만났다.


발로 차는 물레로 만든 그릇은 똑바르지가 않다. 그래도 쓰는데 지장이 없고, 그래서 아름답다. ⓒ Sam Bright


쓸모 있는 행복


1935년, 영국 도예의 거장으로 알려진 버나드 리치는 조선의 달항아리를 한 점 사서 돌아갔다.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고 글을 신문에 남겼는데, 그때 그 ‘행복’은 대영박물관 한국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의 찻사발 ‘이도다완’을 재현한 신정희 선생의 셋째 아들인 신경균 도예가는 2005년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의(APEC) 공식 회의장의 예술품을 장식하는 등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받았다. 그는 잊힌 달항아리를 되살리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국내 324개의 가마터 중 300여 곳을 답사하며 옛 기법을 파고들었다. 2010년에야 휴전선이 있는 강원도 양구에서 전통에 부합하는 흙을 찾았고, 당시에도 몇 안 남은 전통 장작 가마에서 달항아리를 구워냈다. 달항아리에 천착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해외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의 환영식에서는 그의 달항아리가 귀빈을 맞이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달항아리가 주목받는 이유를 그는 ‘실용의 미학’이라 답한다.


“조선의 달항아리는 영조 때 가장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마 안에는 항아리 두 줄을 놓아 굽는데, 불로부터 먼 뒷줄에 비싼 항아리를 놓고, 달항아리는 불과 가까운 앞줄에 놓았죠. 크기도 커서 굽는 중에 형태가 변하기도 쉬운데 거기다 불이 튀고 그래서 모양이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깨뜨리지 않고 쓴 이유는 쓸모 덕분입니다. 구울 때는 불막이로 썼고, 꺼내서는 큰 크기 덕에 양껏 채울 수 있었습니다. 달항아리에 담긴 넉넉한 역사를 누군가는 알아보는 것이죠.”


물레를 차면서 흙을 녹여야 하는 그의 몸은 항상 구부정하고 기울어져 있다. 얼굴이 벌겋게 될 정도로 힘을 줘야 그릇이 나온다. ⓒ Sam Bright


유일무이한 개성


작년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 국내외 수많은 전시에서 신경균 도예가는 값비싼 달항아리를 누구나 만질 수 있도록 해왔다. 달항아리는 양손으로 밑에서부터 주둥이까지 쓸어 올리면서 그 풍만한 형태감과 표면의 부드러움을 같이 느껴야 제맛이다. 비싼 도자기를 깨뜨리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날카로운 모서리만 안전하게 갈아낸 파편을 따로 비치하기도 했다.


“음식을 담지 않는 그릇은 쓸모가 없어요. 쓰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도자의 존재 이유죠. 만져보세요. 감촉이 마치 아기의 피부와 같죠? 예술이라는 것은 멀리서 관람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거예요. 제가 달항아리뿐 아니라 그릇과 찻잔도 열심히 만드는 이유죠. 도자는 오감으로 직접 느껴야 해요. 아무리 비싼 그릇이라도 사용하다 깨지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게 그 그릇의 운명인 것을요.”


간혹 만져지는 작은 기포 구멍과 불똥이 튀어 만들어진 혹, 군데군데 빛이 바랜 것인지 불규칙한 색감과 비대칭의 형태도 모두 완벽과는 거리가 먼데 흠잡을 수가 없다. 예술가가 아주 철저히 지킨 전통의 절차 끝에 자연이 슬쩍 손을 얹어 탄생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흙도 유약도 가마도 다르기 때문에 앞선 작품을 똑같이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요즘의 흙에 요즘의 노하우를 더해서 오늘날도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죠.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힘껏 발을 차야 하는 나무 물레, 일부러 참나무로 난방을 해서 내린 숯으로 만든 유약, 이 모든 것이 모여 조선 달항아리의 몸을 이룹니다. 그리고 5년 넘게 야적해 말린 귀한 소나무 장작을 태우는 불이 나머지를 완성하죠. 열 개를 구워 하나만 흠 없이 건져도 감지덕지예요.”


지금 보는 가마는 장안요의 보물이다. 커다란 입구로 장작이 많이도 들어가지만, 5년 넘게 말린 소나무를 때는 진짜 가마는 그 위(사진 밖)에 순서대로 있다. ⓒ Sam Bright


최첨단의 창의력


도자기는 인류가 멸종된 뒤에도 가장 오랫동안 남을 문명의 산물로 평가된다. 흙이 불과 만나 새롭게 탄생한 도자기는 조선 시대에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대 최첨단의 기술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라믹은 우주로 나가는 기체의 외장에 타일로 붙이는 등의 최첨단 신소재로 쓰인다.


지독하게 전통 방식을 고수해온 신경균 도예가의 작품활동을 2018년 연말에 영국 BBC 소속 미디어시티팀에서 낱낱이 촬영해가기도 했다. 4차산업혁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가 바로 도자기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신경균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 때 세부적인 몸의 움직임과 동선까지 센서를 붙여 데이터화했고, 가마의 온도 변화도 중간에 끊지 않고 온전히 담아갔다. 사람의 생각과 같이 가장 원초적인 것이 4차산업혁명의 시발점이며, 일일이 재료를 채집하고 조합하여 예술품을 탄생시키는 핵심에 인간의 순수한 노동력이 있다는 메시지는 한 편의 거대한 미디어아트로 변모했다. 녹화된 영상 위에 소리를 합성해 도자기의 질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서양 음악과 한국 음악을 적절히 융합해 도자기를 만드는 (빚고, 굽고, 때론 실패해서 깨지고, 결국 완성되는) 과정 일체를 보여준다.


“미래를 얘기하면 모든 걸 다 컴퓨터로 할 것 같지만 실은 온갖 것의 기반이 전통에 있습니다. 방식만 달라질 뿐, 본질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전통을 쪼개서 세분화하면 가장 현대적인 것과 같습니다. 전통과 첨단은 그 단이 맞닿아 있죠. 사라져가는 것에는 분명히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전통이라고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다만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귀중히 지킬 따름이지요. 가스 가마도 물론 사용해 봤지만, 장작 가마의 자유분방한 매력이 없더라고요. 저는 혼신의 노동력을 다하고, 무심한 자연이 손길이 더해져 태어난 것이 바로 이 도자기들입니다.”


무릎을 꿇고 깎은 그릇 위에 칠을 한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은데 아무렇게가 아니다. ⓒ Sam Bright


신경균 도예가

2018 2018 평창동계올림픽 VIP 리셉션장 전시, 평창

2014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전시회-신경균 그릇전

200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의 출품

1991 경상남도 기장군(現부산시 기장군) 장안에 터를 세움

1978 선친 장여 故신정희의 작업장에 입문




[월간 KOREA 2020-02 Interview] 사진&글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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